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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장 제1공화국과  4‧19혁명 313 1편 정치 그는 정부의 미흡한 대처를 비판하였다.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기 위 해 종전終戰 운동을 하고 있던 박진목朴進穆을 지원하기도 하였다.22) 김시현은 민주국민당의 간부 개편에서 상무집행위원회의 부의장 으로 활동하다가 1952년 5월에 아무런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갑 자기 민주국민당을 탈당하였다. 민주국민당을 탈당한 후 김시현은 당시 세간에 충격을 주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저격사건을 주도하였다. 그는 1951년 9월부터 이승만 대통령을 저격하기로 결심하고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그는 먼저 일제시기에 민족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최양옥崔養玉을 만나 의사를 타진했으나 거절당하였다. 그는 다시 항일투쟁기동 안 의열단에서 함께 활동했던 류시태柳時泰를 만나 계획을 설명하 고 참여를 권유하였다.23) 김시현의 계획에 류시태가 동조하면서 대통령 저격을 구체적으로 준비하였다. 그는 1952년 6월 25일에 부산에서 한국전쟁 2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을 저 격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기념식에서 류시태가 쏜 권총이 불 발되는 바람에 대통령의 저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류시태는 현장 22) 박진목, í��내 조국 내 산하��, 계몽사, 1994, 296-309쪽. 23) 류시태는 안동군 풍남면 하회동출신으로 일제시기 의열단이 계획한 제2 차 국내 요인의 암살과 파괴 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 의 부호 李麟熙에게 군자금을 요구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 고 옥고를 치렀다(김희곤, ��안동의 독립운동가 700인��, 안동시, 2001, 1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