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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장 6‧25전쟁과  안동 293 1편 정치 [사진6] 안동의 죽배급에 관한 기사                 (《동아일보》  1952년 5월 16일자) 며, 구호대상자에게는 1일 양곡 3홉과 부식 비 및 연료비로 50원 을 지불하고 그밖에 의 료 및 기타 구호물자 를 분배하였다. 기존의 건물이나 일 반 주택을 최대한 활 용하고 천막 확보를 통 해 수용인원을 증가시 키는 데 노력하였다. 귀환자를 위해 중간 기착지용 천막도 확보 하고 노‧유‧병약자를 위해 무료급식소를 설치하였다.68) 실제 당 시 보고서에 의하면, 유엔의 구호품 지원뿐만 아니라 유엔의 전 문고문 파견 등으로 크게 개선되고 있음이 확인된다.69) 1952년 당시 피난민 구호는 경기 지역이 피난민 855,064명 중 556,773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경상북도가 피난민 274,241명 중 163,332명으로 나타났다.70) 그밖에 사회부에서는 1951년 5월말 까지 구호병원 70개소를 설치하고 매주 약 115,000명의 환자를 치 68) 국방부, 「한국전란1년지í��, 1951, D32‧D38쪽. 69) CIA DAILY REPORT KOREAN BULLETIN(1951.2.9일자), (1951.10.17일자). 70) 공보처통계국, ��대한민국 통계연감��, 1952, 293-2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