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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292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인구증가로 대구지역은 막대한 전재민과 피난민으로 인하여 도시 변두리는 물론 도심지 내에 이르기까지 무허가 건축과 판자 촌이 밀집하고 사회범죄의 증가 등으로 전시풍조가 나타났으나, 그러한 어려움은 대구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유엔의 구호원 조로 극복되기 시작하였다.67) 한편 1951년 1‧4후퇴 시기는 남침 직후의 초기상황과는 달리 북한군과 중공군의 진격이 대체로 37도선인 평택-삼척선에서 저지되었으므로 피난민들을 남쪽 각지에 분산 수용할 수 있었다. 사회부에서는 국방부‧내무부와 협의하여 피난장소를 전국적으 로 나누어 정하는 한편 각지 소개민은 지정장소로 소개 계획이 이루어졌다. 이때 피난민의 수용계획에 의해 피난 도중의 급식과 보건을 제공하기도 했다. 피난민 구호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정부는 전쟁초기 의 피난민 구호의 문제점을 교훈으로 하여 본격적인 구호사업에 착수하였고, 그 결과 전국의 도로 길목에 약 50여 개의 구호대책 반을 설립하였으며, 구호반이 피난민을 구호하고자 활동하여 식 량과 숙소 등을 제공하였다. 구호대책본부는 이때 피난민 구호에 대한 기본방침을 정하였 다. 먼저 구호대상을 정하고 구호에 관한 일체의 경비와 물자는 원칙적으로 지방행정기구를 통하여 요구 대상자에게 분배하였으 67) 대구시사편찬위원회, í��대구시사��3, 1995, 1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