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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286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수용소에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각 도별 피난민 수용인원이 최고에 달했을 때의 현황은 1951년 3월 25일 1,729,516명이었고, 귀향민을 포함하여 정부가 구호한 피난민의 숫자는 5월 16일 2,586,265명으로 최고였다. 1‧4후퇴 직후 전세의 호전으로 일부 피난민들이 고향으로 귀환하였으나 여전히 피난민 총수는 크게 증가하고 있었고, 1951년 초 설상가 상 국민방위군의 해체로 또 다른 피난민 수십 만 명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1‧4후퇴 직후 전체 피난민의 규모는 4,890,339명으 로 파악되었다. 2차 피난시기에는 정부의 피난민 대책이 초기에 비 해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피난민 수용소가 707개로 피난민 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여 200만 명 이상의 피난민을 전부 수용할 수 없었다. 다음에 나오는 [표4]는 전쟁발발부터 1952년 말까지의 피난민 전체 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1952년 말 전체 피난민 수는 약 2백 4십만 명에 달하며 경상북 도 지역의 경우 총 227,789명이 집결하였고, 이중 17,161명이 44 개의 수용소에 수용되었고 나머지 210,628명은 수용되지 못하였 다. 위의 통계는 1952년 말까지의 자료를 담고 있으므로 휴전협 정이 조인된 1953년 7월말까지의 피난민 수는 그 보다 많았을 것 이다. 1952년 말 총 2,394,918명의 피난민 가운데 북한 피난민 은 685,316명에 달하였으며, 당시까지만 해도 아직 고향으로 돌 아가지 못한 피난민들이 상당수에 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