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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장 6‧25전쟁과  안동 275 1편 정치 꾸었으나, 다시 ‘조선 인민유격대 남부군’으로 개칭함으로써 이때 부터 이 부대를 남부군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부대는 부대명칭 의 변경과는 상관없이 이현상의 지휘 하에 후방지역에서 비정규 전을 수행하였다. 북한은 남한 각 지역에서 전개한 비정규전이 성과를 거두게 되자, 1951년 3월 초순에 유격전술에 능숙한 제1지대와 제3지대를 다시 남파하였는데 이들 부대의 병력은 1,700여 명에 달하였다. 남파 초기 일월산에 집결한 이들은 이미 남한 후방지역에서 행동중인 북한군 제10사단, 남부군, 경북도당의 안동군당‧영주군당 등과 합세하여 태백산‧일월산‧속리산을 위시하여 형제봉, 보현산‧동 대산을 연하는 산악일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밖에 도 경남 동부지역 신불산에는 약 100명의 공비가 준동하고 있었으 며, 여기에는 상당수의 북한 패잔병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국군 제2사단은 1951년 2월 13일 풍기로부터 의성으로 이 동함과 동시에 미 제10군단 배속으로부터 육군본부 직할부대로 전환되었다.51) 이때부터 제2사단은 후방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전 개하던 독립 제6‧7경비대대와 국민방위군 1개 연대병력 그리고 태백산지구 전투경찰사령부 예하의 경찰 2개 대대의 작전을 통제 하여 영남일대의 군 보급로 경비와 지역 내의 공비를 소탕하는 임 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미 제7사단에 배속된 제2사단 예하 51) 육군본부, 「작전명령」제23호(19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