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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272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고 있었다. 유엔군사령부는 마산에 주둔하고 있던 미 해병사단을 포항으로 이동시키고, 이 사단으로 하여금 안동-영덕 간의 도로 를 경비하면서 지역 내 북한공비들을 소탕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국군도 미 해병사단을 증강하고 연합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한국해병 독립 제5대대를 안동에 투입하여 미 해병 제1사단 제1 연대에 배속시켰다.46) 1951년 1월 미 해병 제1사단 제1연대에 배속된 한국 해병 독립 제5대대는 미 해병 제1연대의 예비로서 안동-대구 간의 도로를 경 계하고 이 지역 일대에서 준동하고 있던 공비를 소탕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47) 동월 25일 해병 독립 제5대대는 안동일대에 3개 중대를 배치하고, 별도로 1개 중대는 박격포 2문, 경기관총 2정을 배속받아 안동-의성 간의 철로 및 도로의 경비와 부근 일대에 출몰 중인 공비소탕 임무를 부여받고 암산일대에 배치되었다. 이 무렵 안동 남동쪽 12㎞ 지점의 기룡산에 거점을 둔 북한군 낙오병 200여 명은 염하동 일대에서 출몰하면서 이 지역의 경찰 및 관공서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런 정황 속에서 1월 28일에는 공 비 약 200명이 기룡산 북쪽 2㎞ 지점의 추목동 마을을 습격하였 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공비토벌작전에 임하던 안동 경찰토벌대 46) 위의 책, 227쪽; 해병 독립 제5대대는 대대본부, 제21중대, 제22중대, 제23 중대, 제24중대)로 편성되었다. 47) 위의 책, 2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