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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장 6‧25전쟁과  안동 265 1편 정치 하는 과정에서 각종 농작물을 낱알낱알 세어 농민들을 핍박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의 현지조달계획은 곧바로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 다. 그들은 인민위원회 등을 통해 인력과 식량강탈을 가속화하였 으나, 당시 절약농가가 대부분인데다가 주민들의 비협조로 강압 적인 현지조달에는 많은 차질이 있었다.39) 한편 전쟁기간 동안 안동지역의 민간인 피해현황은 내무부 통 계청 자료에 경북지역의 민간인 피해현황이 집계되어 있으나, 구 체적인 자료가 없어 확인하기 곤란하다. 이 자료에 의하면, 경북지 역 민간인 피해현황은 사망이 35,485명, 부상 21,061명, 행방불명 27,112명, 학살 6,609명, 납치 7,584명 등 총 97,851명으로 집계 되어 있다.40) 이러한 민간인 피해상황은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부터 북한군이 낙동강전선에서 후퇴하게 되었던 9월 하 순까지 북한군 또는 지방 좌익들에 의해 주로 발생한 것이었다. 39) Roy E. Appleman, South to the Naktong, North to the Yalu (USGPO, 1961), p.264. 40) 내무부 통계국, í��대한민국 통계연감��, 1955, 212-213쪽;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표(2009) 안동읍의 경우를 분석하면, 전쟁당시 안동교도소 내에 수감 되었던 보도연맹원이나 읍민들 중에 피난 가지 않고 북한군에 부역한 사람 들 가운데 수복직후 군경에 의해 희생당한 경우가 적지 않게 보인다. 진실 화해위원회, 「권서백 증언」‧「김정한 증언」‧「권장하 증언」‧「손영무 증언」 ‧「권진이 증언」‧「김규화 증언」‧「김우규 증언」‧「손인규 증언」‧「하상추 증언」‧「신윤하 증언」‧「김화규 증언」‧「최세경 증언」‧「김인현 증언」, ��민간 인집단희생개인별 피해현황 조사표(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