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page

7 장 6‧25전쟁과  안동 259 1편 정치 한국군 제8사단은 풍기ᐨ영주 전투에서 상대적으로 매우 열세 한 전투력을 지휘관의 적절한 지형 이용과 임기응변의 용병, 그 리고 장병들의 불굴의 투지와 용기로 12일 동안이나 북한군의 진 출을 저지함으로써 북한군 제2군단뿐만 아니라 전선사령부 작전 전반에 큰 혼선을 빚게 하였다. 그러나 한국군 제8사단이 소속된 제1군단의 안동 철수작전은 지역적인 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철수 시간과 낙동강 도하대책을 등한시 하여 막대한 피해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낙동강ᐨ반변천 방어선 형성과 그 이후의 군단작전에도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치 게 되었다. 한국군 제8사단은 안동을 철수한 후 운산리에 사단지휘소를 개 설하고 육본작명 제90호에 의거한 군단작명 제40호에 따라 X선상 의 구미동ᐨ상아동 간 20 ㎞ 정면에 제10연대와 제21연대를 배치하 였다. 그 후 8월 3일에는 육본작명 제91호(1950.8.2,03:00)에 따 른 군단명령 제41호에 의거 Y선상에 새로운 진지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는데, 고란동ᐨ백자동ᐨ입암동ᐨ윤암동ᐨ상화동에 이르는 24 ㎞가 방어책임 지역이었다. 이른바 낙동강 교두보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는데 8월 4일에는 군단 참모장 최덕신 대령이 사단장에 부 임하였다. 한편 예천을 탈취하고 풍산에 이른 북한군 제8사단 제83연대는 낙동강을 도하하여 인금동을 공격함으로써 8월 2일부터 좌측 제 21연대와 접촉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안동을 탈취한 북한군 제 12사단은 김일성으로부터 안동사단의 칭호를 받고 전열을 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