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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256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진지를 이탈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제16연대는 지휘체제가 와해되고 혼란이 일어나 흩어진 상태에서 철수하기 에 이르렀다. 심지어 일부 병사들은 북쪽으로 북상하면서 퇴로를 찾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연대 주력의 철수 엄호를 책임진 제3 대대장은 제10중대장과 더불어 동요하는 부하들을 격려하며, 방 어정면으로 육박하는 북한군을 저지하면서 철수를 개시하였다. 그러나 이들 두 지휘관이 능선상에서 진두지휘하는 동안 그들의 위치가 북한군에게 노출되어 애석하게도 북한군의 집중사격을 받아 거의 같은 시간에 전사하고 제3대대는 분산되었다. 분산된 제16연대 병력이 낙동강변에 도착하였을 무렵에는 이미 안동교가 폭파되고 계속해서 증강되는 북한군이 강변 일대의 고 지를 점거한 채 사격을 집중하였다. 이에 병력을 수습할 사이도 없이 제16연대 병사들은 급류에 뛰어들어 도하를 강행하였다. 이렇듯 제16연대는 철수 초기부터 악전고투한 끝에 간신히 낙 동강을 도하하였으나 이날 계획된 집결지에 모인 병력은 250명 미만이었다. 철수 과정에서 제16연대는 전사 137명, 부상 120명, 실종 594명 등 총 851명의 병력 손실이 발생했다. 이는 철수를 개시할 당시 1,100여 명이던 연대 병력의 77%에 해당하는 막대한 피해였다. 한국군 제8사단장은 철수작전 실패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 간에 사단이 입은 피해가 매우 큰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 나 주저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판단 하에 사단장은 제21연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