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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장 6‧25전쟁과  안동 253 1편 정치 한 제21연대는 제3대대(ᐨ)를 선두로 안동시내에 돌입하였다. 그런 데 이때 이미 북한군의 일부가 시내로 들어와 이곳저곳에서 사격 을 가하였다. 더욱이 제21연대가 인도교에 이르렀을 무렵에는 북 쪽 강변 일대의 구릉을 점령한 북한군이 기관총 사격을 집중하였 다. 제3대대(ᐨ)와 이를 후속한 제1대대의 일부 병력이 인도교의 통과를 강행하였다. 그러나 제1대대의 주력인 제2중대와 제3중 대, 그리고 제2대대는 강안에 도착하기 전에 안동교가 폭파됨으 로써 강을 건널 수 없었다. 안동교와 안동철교 폭파는 군단이 안동에서 철수한 후 북한군 의 낙동강 도하를 저지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제1군단은 안 동교와 안동철교를 각각 장애물 제18과 제19로 지정하고 엄학섭 중령이 지휘하는 군단 공병단에 폭파준비를 명령하였다. 이에 따 라 공병단은 한강교 폭파를 담당하였던 폭파반이 7월 30일에 이 미 폭약장치 작업을 끝내고 폭파작업을 제8사단 공병대대에 인 계한 상태였다. 본래 군단에서는 제8사단과 수도사단이 철수를 완료하기로 계획된 8월 1일 06시경에 폭파하기로 결정하고 철 수부대와의 현지협조를 위하여 군단 참모장 최덕신 대령을 현장 에 급파해 교량폭파를 직접 지휘하게 하였다. 제8사단의 선발 연대인 제10연대와 이를 후속한 제21연대의 일 부 병력이 안동교를 무사히 통과하고 제21연대의 주력이 북쪽 강 안에 도착했을 무렵 안동교와 안동철교 부근 낙동강변에 있는 구 릉 지대를 북한군이 점령하고 기관총으로 교량을 제압하는 사태 가 벌어졌다. 더욱이 북한군 병력이 안동교를 향하여 빠른 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