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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장 6‧25전쟁과  안동 235 1편 정치 천을 방어할 태세를 갖추고 있을 무렵, 1950년 7월 4일 오후 충주 로 이동하여 방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단장은 전날 제천역에 대기시켜 놓은 열차를 이용한다면 사단이 동시에 열차 행군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사단장은 제천-충주간 산악도로를 도보로 행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열차편으로 안동-대구-청주-충주 로 이동하는 시간이 엇비슷한 점을 감안하여 열차를 이용하여 이동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개전 이래 계속된 전투와 행군으로 지쳐 있는 장병들이 열차로 행군하는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12) 그리하여 제8사단은 7월 5일 02시에 제천을 출발하였다. 사단 의 후방제대가 15:00시경부터 안동에 도착하기 시작하였고, 23:00 시경 주력부대가 모두 도착하였다. 제8사단이 안동역에 도착하자 안동읍민들은 불원간 북한군이 들이 닥칠 것이라고 추측하고 술 렁이기 시작하였다. 제8사단은 결과적으로 사단장이 육군본부에 단양방어의 중요성을 설득하여 다시 단양으로 복귀하도록 조치함 에 따라 7월 6일 10:00시 안동을 출발하여 18:00시 단양에 도착 하게 되었다.13) 그러나 제8사단이 전쟁초기 후방지역인 안동에 까지 철수한 것은 안동읍민들에게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큰 충 격이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후 많은 주민들이 남쪽으로 피난을 12) 이성가 증언(1965.3.17),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í��증언록��, HA01501. 13)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단양-의성 전투��, 1982, 22-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