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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편 정치 1 장 위정척사운동 대원군 집권 하에서 두 번의 양요洋擾를 거치면서 강화된 ‘척사斥邪’ 분위기는 개항과 더불어 더욱 고조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곧 집 단적인 상소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때의 상소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세력은 김평묵 金平黙을 중심으로 한 이항로의 제자들, 즉 재야 의 노론이었다. 이들은 개화파의 논리와는 달리 ‘왜양일체론倭洋一 體論 ’을 주장하면서 개항을 반대하였다. 재야 노론의 상소운동은 물 론 일본과의 통교 반대와 이를 추진하던 정부당국, 특히 집권노론 세력을 비판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통교를 안으 로부터 내응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남인들에 대한 반대와 견제이기 도 하였다. 내응세력으로서의 남인에 대한 의혹은 재야의 노론에 의해 일찍부터 제기되어 오고 있었는데, 개항하게 되면 노론은 일 망타진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즉, 그 동 안 뜻을 잃었던 남인에 의해 찬탈의 변이 일어나 노론은 일망타진 섬멸될 것이며, 이이李珥‧송시열宋時烈 같은 모든 현인들도 시호諡號 와 작위爵位가 깎여 문묘文廟에서 팽개쳐질 것이고, 윤휴의 귀신이 대종사大宗師가 될 것이라는 등의 우려였다. 이런 점에서 김평묵은 “강화가 이루어진 후에 만일 남인 일대一帶가 사친私親(대원군)을 끼 고서 창을 메고 죄를 성토하는 거사를 일으킨다면 어떠한 지경에 이를지 알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상소운동을 일 망타진의 위기에서 서인을 구하는 일이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강 화를 주장하는 서인 당국자에게 왜 남인들이 엿보게 하는 구실을 주느냐고 반문하기까지 하였다.6) 이러한 우려는 정부 내 개화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고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