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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230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부는 매점매석으로 나타날 생필품의 품귀를 막고 경제적인 혼란 을 예방하고자 28일 「긴급명령」제2호인 ‘금융기관 예금 등 지불 에 관한 특별조치령’을 내렸다.3) 다음으로 고려된 우선 조치는 피난민에 대한 긴급 대책이었다. 그 러나 사전에 전쟁으로 인한 피난 비상계획이나 철수 계획을 수립한 적이 없었으므로 체계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웠고,4) 점차 상황이 급박하여 그저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데 분주하였다. 1950년 6일 27일 새벽 1시 피난민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개최 된 비상국무회의에서 이범석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울 시민 철수를 질서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나, 대부분 참석 자들의 태도는 ‘안일하고 낙관적’이었다. 결국 이 심야 회의에서는 수원 천도만을 결정하고 시민철수문제는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5) 거의 같은 시각인 새벽 2시경 이미 대통령도 대구를 향해 피난을 떠나고 있었다.6) 1) 국방부, í��한국전란1년지��, 1951, CC48-49쪽; 경찰 발표에 의하면 당시 불 순분자들이 저지른 태업활동은 없었지만 도시지역에서 저지른 범죄행위는 수없이 증가되었다. FEC, Evacuation of Refugees and Civilians from Seoul(Unpublished, 1952), pp.2-3. 2)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1권, 1978, 631쪽. 3) 국방부, ��한국전란1년지��, 1951, CC48-49쪽. 4) Evacuation of Refugees and Civilians from Seoul, p.2. 5) 중앙일보사, ��민족의 증언��제1권, 중앙일보사, 1986, 33-34쪽. 6) 위의 책, 53쪽; 대통령 수행비서 황규면은 “27일 새벽 2시 피난길에 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