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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장 해방정국과  국가건설운동 225 1편 정치 후면사무소를 점거하는 등의 투쟁을 전개했으나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이와는 달리 우파 세력은 미국과 유엔의 결정을 지지하고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미군정이 5월 10일에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자, 좌파 세력은 선거를 무산시키려는 활동에 들어갔다. 좌파 세력은 선거사무를 담당하는 곳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서류를 탈취했으며, 심지어 선 거에 출마하려는 인물의 집에 폭탄이나 돌을 투척하기도 하였다. 안동에서도 선거에 입후보한 후보자의 집과 선거사무소를 습격하 였다. 하지만 선거는 예정대로 실시되었다. 안동은 국회의원 선거 법에 따라 갑구와 을구 두 곳으로 선거구가 나뉘어 실시되었으 며,14) 2개 선거구에 9명이 출마하였다. 입후보자의 현황과 경력 은 다음의 표와 같다.15) 13) 허종, 「미군정기 후반 대구지역 좌파세력의 조직과 국가건설운동」, í��대구 사학��75, 대구사학회, 2005, 167-168쪽. 14) 국회의원 선거법은 인구 15만 내지 25만 미만의 府‧군은 2개 선거구로 획정하도록 규정했으며, 갑구는 안동읍‧와룡면‧북후면‧서후면‧풍산면‧ 풍천면이 속했으며 인구는 103,551명이었다. 을구는 일직면‧남후면‧남선 면‧임하면‧길안면‧임동면‧월곡면‧예안면‧도산면‧녹전면이 속했으며, 인 구는 96,199명이었다(한국법제연구회, ��미군정법령총람��, 한국법제연구회, 1971, 454-474쪽). 15)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대 국회의원 선거상황��, 1989, 5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