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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218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로 전국의 철도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으며, 파업은 다른 분야 까지 확산되었다. 안동에서는 9월 24일 철도노동자 8백여 명이 파업에 들어갔으며, 이어 안동우편국 노동자들도 동조파업에 들 어갔다. 전국에서 9월 총파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10월 1일 대구에서 파 업 중이던 노동자‧시민들과 경찰 사이의 충돌로 노동자가 사망하 는 일이 일어났다. 다음날 대구에서 노동자, 청년‧학생, 시민들이 경찰의 발포를 규탄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는 ‘10월 항쟁’이 발발하였다. 이는 곧바로 경북지역으로 확산되어 경 북의 대부분 지역으로 번져갔다.11) 안동에서는 다른 지역과는 달 리 군중들이 경찰서를 비롯한 관공서를 공격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역 앞 광장에서 농성을 벌 였다. 이는 미군정과 경찰이 항쟁을 막기 위해 철저히 대비했기 때 문이었다. 경찰은 인근 지역의 항쟁 소식을 접한 후 경찰 전원을 소 집하여 합숙하고 영주에서 경찰의 지원을 받아 만약의 사태를 대비 하였다. 아울러 미군의 전투부대가 파견되어 경비를 강화하고, 지 역의 대표적인 좌파 인사 수십 명을 일제히 검거했기 때문이었다. 안동에서 대규모 항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안동농림학교와 안동 여자중학교, 그리고 안동여자고등학교 등 학교에서는 교사들과 일 부 좌파 학생들이 봉기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 때문에 교사들과 11) 정해구, í��10월인민항쟁 연구��, 열음사, 1988, 106-1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