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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장 해방정국과  국가건설운동 203 1편 정치 유지하여 대중 생활의 확보를 기함을 강령으로 발표하고 활동하 였다.2) 안동에서는 일제 치하에서 민족운동을 펼쳤던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 건설을 위한 단체를 결성하였다. 단체의 명칭을 두고 서 울과 다른 지역처럼 건준의 명칭을 사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활동 내용이 사회 질서를 확립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 중심이므 로 ‘안동치안유지회安東治安維持會(이하 ‘치안유지회’로 줄임)’를 사용 하기로 결정하였다. 준비위원들이 치안유지회의 중심이 되었으며, 이후 안동군의 명망가들이 대거 참가하여 위원의 수를 늘리고 부서 도 증설하였다. 치안유지회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좌우 세력 이 참여한 좌우 연합의 조직이었다. 치안유지회 위원장은 대한민 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이상룡의 손자인 이대용이 선출되었으 며, 김광현이 고문을 맡았다. 이대용과 김광현은 치안유지회의 결 정에 따라 서울로 가서 중앙의 정세를 비롯한 정국의 추이를 살펴 보고 귀향하였다. 치안유지회는 권력의 공백 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하고 치안을 확립하는 일에 중심을 두고 활동하 였다. 아울러 해방 직후, 일본‧만주 등지에서 귀국하는 조선인의 구호 사업 등의 활동을 펼쳤다. 건준이 국가 건설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미군이 남한을 점령한 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정치 세력의 움직임에 변화가 나타났다. 2) 서중석, í��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역사비평사, 1991, 196-2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