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page

5 장 1920년대  이후  국외  안동인의  항일투쟁 199 1편 정치 었지만, 폐막은 페트로그라드 우리츠키 궁전에서 열렸다. 회의가 끝난 뒤 김재봉과 김시현이 선택한 길은 조금 달랐다. 김재봉은 소련에 1년 정도 머물면서 이르쿠츠크파의 적자가 되어 국내로 들어와 조선공산당을 창당하게 되고, 반면 김시현은 상해 로 돌아와 의열단의 투쟁 노선 핵심부에 참가하였다. 김시현은 이 미 중국관내 지역에서 설명했으므로, 여기에서는 김재봉이 소련에 서 걸어간 행적을 더듬어 본다. 김재봉은 코민테른 극동비서부가 있던 치타로 가서 사회주의 이 론을 익히고, 이르쿠츠크파의 고려공산당 대회에 참가하여 중앙 위원으로 뽑혔다. 마침 1922년 12월에 조선공산당 중앙총국, 즉 꼬르뷰로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되었다. 국내에 조선공산당 건설을 위한 기초 작업이 시작되고, 1923년 3월 그는 국내 운동세 력을 통합하라는 임무를 띠고 귀국했다. 그리고서 사회주의로 민 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공산당을 조직하고 항일투쟁을 벌이 다가 투옥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