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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198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김시현이 포함되었다. 두 사람 모두 3‧1독립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뛰어 들었다가 옥 고를 치르고 1921년 가을에 출옥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김재봉은 임시정부를 지원 활동을, 김시현은 의열투쟁을 각각 벌이다가 옥 고를 치른 것이다. 김재봉과 김시현은 모두 조선노동대회로부터 위임장을 받았다. 회의 시기가 1922년 1월 말로 연기되고, 장소는 수도인 모스크 바로 변경되었다. 모스크바로 이동한 참석자들은 모두 자신을 파 견한 단체나 기관의 위임장을 제시하고, 학력과 투쟁경력 및 참석 목적 등을 담은 조사표를 작성하여 코민테른 극동부 고려부에 제 출했다. 김재봉은 회의에 참석하는 ‘목적과 희망’에 대해 “조선 독 립을 목적하고, 공산주의를 희망함”이라고 적었다. ‘조선 독립’이 최고 가치이자 목표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략으로 개최국의 이념인 공산주의를 내세운 것이다. 마침내 1922년 1월 21일에 모스크바 크렘물린 궁전에서 개회식 이 열렸다. 의장단에 중국‧일본‧몽골 등과 함께 2명씩 배정받아 김규식과 여운형이 포함되었다. 회의는 2월 2일까지 13일 동안 진 행되었다. 이 회의에서 결의된 한국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 다. 첫째, 조선에서 계급의식이 아직 발달하지 못했으므로 계급운 동이 시기상조이다. 둘째, 일반대중이 민족운동에 동참하고 있으 므로 계급운동자가 독립운동을 후원하고 지지해야 한다. 셋째, 상 해에 있는 임시정부는 그 조직을 개혁시켜야 한다. 회의는 2월 2일 대회선언을 채택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시작은 모스크바에서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