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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190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의 무기를 반입할 때 여기에 가담했다가 실패하자 다시 탈출했다. 김지섭은 1924년 1월에 동경 일본왕궁 앞에서 폭탄을 던지는 거 사를 벌였다. 이는 한 해 앞서 동경에서 일본인들이 관동대지진 을 악용하여 한국인을 무참히 살해하였던 만행을 응징하려는 것 이었다. 김지섭은 의열단을 대표하여 1923년 12월 21일 밤 폭탄 세 개를 갖고 일본으로 떠났다. 1924년 1월 5일 왕궁 정문으로 접근하 다가 경찰이 다가서자 폭탄을 던졌고, 급히 피하면서 왕궁으로 들 어가는 다리인 이중교二重橋에 다시 폭탄을 던졌으나 불행하게도 모 두 폭발하지 않았다. 체포된 김지섭은 1925년 5월 사형을 선고받았 다가, 1927년 20년으로 감형되었지만, 다음 해 감옥에서 의문스런 죽음을 당하였다. 1920년대 초반에 상해에서 이름을 떨친 안동인으로는 국민대 표회의에 참가한 김동삼이 단연 대표적이다. 국민대표회의는 1923 년 1월초부터 6월초까지 상해에서 열렸다. 수립기 직후부터 몰아 닥친 임시정부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또 독립운동의 전반적인 틀을 개편하기 위해 전세계 모든 곳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 세력 의 대표들이 상해에 모인 국민대표회의였다. 이 회의는 독립운동 사상 가장 큰 규모의 모임이었다. 각 지역과 단체 대표 300여 명이 상해로 몰려들었고, 그 가운데 대표 자격을 정식으로 인정받은 인 물이 130명을 넘었다. 여기에 참가한 안동인은 김동삼‧김형식金衡植‧류시언柳時彦 등이다. 김동삼은 서로군정서, 김형식은 한족회, 그리고 류시언은 길림교 육회를 각각 대표하여 참석하였다. 김동삼은 이 회의에서 의장에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