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page

Ⅰ정치‧행정Ⅰ 188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들은 주로 만주지역에서 활동했고, 관내지역 활동자는 드물었다. 안동인의 모습이 이곳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시기는 3‧1독립운동 직후, 임시정부가 수립되던 무렵과 그 이후였다. 정부 수립이 논의 되던 단계가 바로 그 시기였다. 김동삼‧김응섭이 대표적이다. 김동 삼은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하던 4월, 김응섭은 파리장서에 참가하 면서 역시 같은 시기에 이곳에 도착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모두 임시정부의 수립 과정에서 주역이 되고, 특히 김응섭은 잠시 법무 차장이 되기도 했다. 와룡면 가구동 출신 안상길도 임시정부에 참가한 인물이다. 안 창호를 만나고 경북교통부장이란 직책에 임명된 그는 서울로 와 서 김재봉‧김남수 등 안동출신 인물들과 만나 협의한 뒤, 그는 대 구에 미곡상점을, 안동에는 여관을 열어 활동 거점을 확보했다. 그리고서 임시정부에 보낼 자금을 마련하고 지원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활동이 1920년에 들어 안상길‧김재봉‧김남수는 모두 검 거되고 옥고를 치렀는데, 일제는 이를 ‘조선독립단사건’이라 이름 붙였다. 임시정부 수립 이후에 안동인이 다시 등장한 무대는 의열투쟁 이었다. 이 시기 의열단원으로서 의열투쟁사에 이름을 드러낸 안 동 인물은 김시현과 김지섭이 대표적이다. 의열단은 당시 만주와 중국본토에서 조직된 많은 독립운동단체가 미온적이고 온건한 독 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서 급진적인 폭력투쟁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 대표는 밀양출신 김원봉이었고, 이념을 체계화시켜 준 인물은 신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