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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22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면 선비들의 원기元氣가 흩어져 사학邪學이 그 틈을 타고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도 하였다.2) 영남의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대원군의 서원훼철은 몇 차에 걸쳐 진행되다가 마침내 1871년(고종 8)에는 ‘문묘종향인文 廟從享人 ’‧‘충절대의지인忠節大義之人’을 배향하는 47개소를 제외한 모 든 원사院祠의 철폐로 나타났다. 서원훼철에 대한 반발은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이 가장 격렬하였다. 영남 남인은 오랫동안 중앙 정계에서 배제되어 향촌지배세력으로 존재해 오고 있었다. 서원 은 이들이 이 시기 향촌사회에서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장치였다. 따라서 서원의 훼철은 바로 영남의 존망과 직 결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다음은 이 같은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국가의 안위는 오도吾道(영남)의 존망存亡에 달려 있고, 영남의 존망은 서원을 철폐하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바로 진 신장보縉紳章甫들이 죽음에 이르러야 할 때이다. 진실로 스스로 여기에 안일하고 여기에 방과放過하여 다만 자기의 화복만을 보고 영남의 진멸殄滅됨을 궁휼히 생각하지 않는다면 열성조列 聖朝에 배양된 혜택과 여러 선배들이 이룩해 놓은 공적에 어찌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겠는가.3) 2) 「疏事始末」(안동고성이씨 고문서). 3) 「道南鄕會所通列邑兼答西岳通文」, í��疏行日記��4월 20일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