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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장 1920년대  이후  국외  안동인의  항일투쟁 183 1편 정치 을 맡았고, 김형식도 한족회 대표로서 참석하였다. 만주로 다시 돌아온 김동삼은 1924년 3월 전만통일회의주비회에 대한통의부 대 표로 참석하여 교육분과위원으로 활약하였다. 김동삼은 여기에서 교육위원으로 뽑혔고, 김형식이 중앙행정위원이 되었다. 또한 이 광민도 서로군정서 대표로 참석하여 왕성한 활약을 보였다. 1924년 11월 정의부가 발족되었다. 작은 규모의 독립운동 단체들 이 큰 조직으로 뭉쳤는데, 정의부‧참의부‧신민부가 바로 그것이었 다. 정의부는 압록강과 두만강 건너 지역을 비롯하여 길림성과 흑룡 강성 지역 전체를 장악하는 조직이었다. 김동삼은 중앙행정위원 겸 외무위원장, 김원식은 간정원幹政院 비서장, 김응섭은 중앙심판위원 장, 이광민은 민사부 서무과 주임위원 등을 맡았다. 1927년 4월 김동삼은 김이대金履大‧현정경玄正卿 등 정의부 간부 30여 명과 함께 농민호조사農民互助社를 결성하였다. 농민들의 상호 부조 속에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굳게 만드는 일이었다. 다시 1928 년 5월 김동삼은 정의부를 대표하여 만주지역 독립운동계의 대 통합 운동에 나섰다. 3부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노력이었다. 여기 에 김동삼과 김원식은 정의부 대표로 참석하였다. 그러나 대통합 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노출되었다. 이념문제나 통합 방법문제를 둘러싸고 극복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1928년 7월 삼부통일회의 결렬이 눈 앞에 닥치자, 김동삼은 혁신 의회를 조직하였다. 김동삼이 의장을, 김원식이 중앙집행위원장을 각각 맡았다. 1929년 좌우합작을 도모하기 위해 민족유일당재만책 진회가 조직되었고, 중앙집행위원장인 김동삼과 동지 김원식에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