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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182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과 서로군정서‧통의부 소속 영남인사들을 비롯하여 먼저 100여 호 한인을 취원창에 이주시켰다. 취원창 후방기지는 1924년부터 1934년까지 약 10년간 한인이 250호로 증가되고, 독립운동의 주 요 기지가 되었다. 이곳에 이주한 안동출신이자 서로군정서 헌병 출신인 류동범柳東範‧김만수金萬秀 등은 1924년 4월 22일 하얼빈 주 재 일본영사관 소속 특별형사경찰부장 국길보정國吉寶正을 비롯한 중일경찰들과 접전을 벌여 형사경찰부장 등 여러 명을 사살한 후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1920년대 안동인들이 참가한 조직으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1922)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1922)‧전만통일회의全滿統一會議(1923)‧정의부 正義府(1925)‧민족유일독립당재만책진회民族唯一獨立黨在滿策進會(1928) ‧혁신의회革新議會(1928) 등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이상룡이 정 신적 지주라면, 김동삼은 실제 활동의 중심이었다. 또 이상룡이 1910 년대를 장식했던 인물이라면, 김동삼은 1920년대의 ‘별’이었다. 김동삼은 1920년 7월 이청천과 함께 서로군정서군을 안동현으 로 이동시켜 대한군정서와 연합 작전을 폈다. 1922년 봄에 대한 통군부 교육부장를 맡은 김동삼은 8월에 남만한족통일회의를 열 고, 서로군정서‧대한독립군단‧관전동로한교민단‧대한광복군영‧ 대한정의군영‧대한광복군총영‧평안북도독판부 등의 독립군 대표 와 논의하여 대한통의부를 결성하고 총장이 되었다. 김동삼이 펼친 통합운동의 전형적인 활동이었다. 통의부의 의용군은 국경지역에 서 국내진입작전을 시도하기도 했다. 1923년 1월부터 상해에서 국 민대표회의가 열리자, 김동삼은 서로군정서 대표로 참석하여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