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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178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여 안동경찰서와 헌병파견대를 점거하고 일본인을 제압한다는 활동 목표를 세웠다. 조선회복연구단은 조직 후 단원을 확대하고 민족의식을 고양시키는 활동과 함께 무장투쟁을 위한 준비에 들어 갔다. 먼저 일제의 기밀을 빼내기 위해 우체국 직원을 포섭하고, 무장투쟁을 효과적으로 벌이기 위해 철도와 전기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접촉하여 포섭하였다. 또한 단원들의 체력 증진을 위해 무술을 익히고 통신 절단 등의 훈련을 받았다. 명성회는 매달 한두 차례 모임을 통해 역사와 사상 관련 서적을 읽고 토론을 하면서 민족의식을 키워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1944년에는 회지를 발간 하였다. 회지의 내용은 문학 작품과 감상문 등과 함께 민족적 자각 을 일깨우는 논고, 농촌 계몽,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식, 학병의 탈 주 소식, 태평양전쟁의 전황 등을 담았다. 조선회복연구단과 명성회는 1945년 2월에 무장투쟁을 실행한 다는 계획을 세우고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조선회복연구단의 단원 이준택李準澤과 갈정호가 주고받은 편지 내용이 일제 경찰의 검 열로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이승태李承台와 김인규金仁圭도 체포되어 계획을 연기하였다. 조선회복연구단과 명성회는 일제의 육군기념 일인 3월 10일에 거사를 실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날 일제가 기 념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를 치르기 때문에 경비가 허술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58) 58) 신승훈, 「해방직전(1943~45)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연구」, í��안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