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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 1920년대  이후의  사회운동 173 1편 정치 분으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었다. 안동콤그 룹은 동지를 획득하기 위한 좋은 기회로 판단하고 1933년 3월 안 동‧영주‧봉화 3개 군에서 메이데이를 이용하여 대규모 봉기를 계 획하였다. 하지만 사전에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모두 140명 넘게 붙들리는 바람에 안동콤그룹은 와해되었다.52) 안동콤그룹은 노동자‧농민을 기반으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려 는 일종의 전위조직이었다. 또한 침체된 안동의 사회운동을 활성 화시키고 이를 지도할 목적을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노동자와 농민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민족주의자까지 조직의 구성원으로 포괄하였다. 궁극적으로 노동자‧농민의 정부 수립을 목표로 했으며, 노동자‧농민의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취시키 고 파탄에 이른 대중의 생존권을 옹호하는 투쟁까지 전개하였다. 하지만 지나친 비합법투쟁과 정치투쟁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 지 못한 한계도 가지고 있었다. 2. 안동농림학교 학생의 항일투쟁 1) 조선회복연구단과 명성회의 조직 1937년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조선은 전시체제로 들 52) 김희곤, í��안동의 독립운동사��, 안동시, 1999, 371-3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