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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 1920년대  이후의  사회운동 165 1편 정치 의 내용을 담은 강령을 채택하였다. 신간회는 전국에 약 140여 개 의 지회와 약 4만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였다. 전국 곳곳에서 신간회 지회가 결성되는 가운데 안동에서도 결성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1927년 7월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 력이 신간회 안동지회 설립준비위원회를 개최하여 정현모鄭顯模‧ 심규하沈揆夏‧권태석權泰錫 등 20명의 준비위원을 선정하고 설립 준비 활동에 들어갔다. 같은 해 8월 26일에 보광중학교 강당에서 본부에서 파견된 홍명희 등 내빈과 회원 9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대회를 가졌다. 류인식과 정현모가 회장과 부회장으로, 권태 석은 총무간사로 선임되는 등 23명이 임원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안동에서 민족운동을 상징하던 류인식이 신간회에 참여하고 회장 으로 선출된 사실은 대단한 의미를 가졌다. 안동의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뿐만 아니라 각 면의 유지들의 참여도 이끌어낼 수 있 었기 때문이다. 신간회 안동지회는 평양지회 다음으로 많은 7백 여 명의 회원을 확보할 정도로 규모가 컸으며, 이는 활발한 활동 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47) 신간회 안동지회가 존립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펼쳤던 활동은 지 역민의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취시킨 계몽운동이었다. 안동지 회는 순회강연회‧학술강연회‧농촌문제강연회‧임시특별강연회 등 47) 이현정, 「신간회 안동지회의 성립과 활동」, í��안동사학��7, 안동사학회, 2002, 144-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