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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20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에서 천주교 등의 학설을 주기론主氣論으로 이해하거나 화이론華夷論 에 입각하여 배척하였다. 즉, 기氣가 이理에 복종할 때에만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거나 조선을 차원 높은 문화민족, 곧 소중화小中華로 생각한 반면, 서양을 임금도 부모도 무시하는 금수의 나라로 규정 하였던 것이다. 이후 서구의 침략이 계속되면서 조선왕조의 대응도 강화되 어 갔다. 1866년에는 천주교도의 처형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불태 우고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강화시켰다. 또 이 해 8월에는 제너 럴셔먼호사건과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연이어 터졌다. 이에 따라 서 학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강화되고, 척사윤음이 재차 반포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호남의 대유학자 부호군 기정진과 동부승지 이항로가 척사소斥邪疏를 올렸다. 이들은 천주교를 이단으로 여겨 배척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서양의 경제적 침략을 예리하게 간 파하고 양물洋物의 사용금지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 같은 조야 의 척사론을 바탕으로 하여 대원군은 더욱 강력한 쇄국양이정책鎖 國洋夷政策을 추진할 수 있었다. 1871년 4월에는 미국공사 로우가 아시아함대 사령관 로저스와 군함 5척을 이끌고 통상을 요구하면서 광성진을 점령하자 여기에 맞서 싸우던 중군中軍 어재연魚在淵 등이 전사하는 신미양요辛未洋擾가 발생했다. 이제 서양의 침략이 다만 종교적인 것에서 그치는 것 이 아니라 경제적 군사적 침략임이 분명해졌다. 이를 계기로 대 원군은 척화비斥和碑를 전국의 각 고을에 세우게 하여 더욱 강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