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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162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6‧10만세운동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지만 후유증도 만만 치 않았다. 권오설을 포함한 조선공산당 관계자들이 대거 체포되 면서 제2차 조선공산당은 와해되었다.45) 1926년 12월 다시 재건 된 제3차 조선공산당에서 김남수는 중앙집행위원으로, 안상길安相吉 은 7인 후보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혔다. 특히 안상길은 1927년 8월 에 결성된 조선공산당 경상북도위원회의 책임비서로 선임되었으 며, 이회승‧이운호‧류연술‧남병세‧이지호‧김경한‧안상태‧오성무 ‧김연한‧김기진은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 조선공산당 경상 북도위원회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이들이 대부분 체포됨으로써 안동의 사회주의운동은 큰 타격을 받았다.46) 한편 1925년 조선공산당이 창당된 이후 사회주의자들이 여러 차례 검거되면서 와해와 재건이 반복되는 가운데, 1928년 국제 사회 주의운동을 지도하던 코민테른의 결정은 사회주의 세력의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코민테른은 조선공산당이 소부르주아지와 지식인 중심이었다고 비판하면서 조선공산당의 승인을 취소하고, 노동자와 빈농을 획득하여 당을 결성할 것을 촉구하는 ‘12월 테 44) 김희곤, í��안동 사람들의 항일투쟁��, 지식산업사, 2007, 427-430쪽. 45) 권오설과 권오상은 일제 경찰이 자행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했 으며, 6‧10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던 權五雲도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46) 김일수, 「1920년대 경북지역 사회주의운동」, ��한국현대사와 사회주의��, 역사비평사, 2000, 92-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