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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 1920년대  이후의  사회운동 161 1편 정치 [사진11] 파조교(《동아일보》 1926년 6월 12일자) 와 만세운동의 지방 확산을 맡았고, 조선학생과학연구회는 장례 식 당일 행렬에서의 만세 선창과 격문 살포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6‧10만세운동의 선봉 역할을 했던 조선학생과학연구회는 일찍부 터 권오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안동출신의 이선호李先鎬‧ 류면희柳冕熙‧권오상權五尙‧권태성權泰晟이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 었다. 권오설을 포함한 일부 관련자들이 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직 전에 일제 경찰에 체포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치밀한 계획 으로 준비되었기 때문에 6‧10만세운동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이처럼 일제시기 대표적인 민족운동으로 손꼽히는 6‧10만세운동 에서 권오설을 비롯한 안동출신의 인물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 하였다.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