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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 1920년대  이후의  사회운동 159 1편 정치 안동출신의 사회주의자들은 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중앙 차원 의 활동에서도 두드러졌다. 김재봉은 국제 사회주의운동을 지도 하고 있던 코민테른 산하의 꼬르뷰로부터 국내 조선공산당 기관의 건설을 책임지라는 지시를 받고 귀국하였다. 그는 이준태와 함께 사상단체 신사상연구회新思想硏究會를 조직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또한 분열되어 있던 사회주의 세력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각종 사회운동단체가 결성되는 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1925년 4월 창당된 제1차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로 선출되 었다. 권오설은 조선노농총동맹의 집행위원이자 상무위원으로 활동 하면서 조선공산당 산하 청년전위조직인 고려공산청년회의 중앙집 행위원에 선임되어 선전부를 담당하였다.42) 제1차 조선공산당은 같은 해 11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일제 경 찰에 발각되어 관계자들이 대거 체포되면서 와해되었다. 일제 경찰 의 체포를 모면한 사회주의자들은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의 재건을 시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준태와 권오설은 조직 재건의 중 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조선공산당이 재건된 후 이준태는 중앙집행 위원으로 선임되어 당원의 입당 및 간부를 선임하는 데 중요한 역할 을 담당하였다. 권오설은 고려공산청년회의 집행위원회 비서부 책 임비서와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김남수는 고려공산청년회의 중앙위원으로 뽑혀 활동하였다. 42) 김희곤, í��안동 사람들의 항일투쟁��, 지식산업사, 2007, 412-4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