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page

Ⅰ정치‧행정Ⅰ 144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청년회와 같은 선언과 강령을 채택하였다. 청년회의 혁신은 서울과 안동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던 권오설과 이준태를 비롯한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한 청년들의 주도 아래 진행되었다. 청년회의 혁신 이후 청년단체의 활동이 활발해졌으며, 이전에 청 년단체가 없었던 임하면과 남후면에서도 청년단체가 결성되었다. 청년단체들은 전국의 청년운동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조선청년총 동맹에 가입하였다. 아울러 1925년 8월 지역 청년단체들의 고립 분산적인 활동을 극복하여 통일적인 청년운동을 펼치기 위해 군내 8개 청년단체들이 연합한 안동청년연맹을 결성하였다.21) 명실상부한 청년단체로 거듭난 각 청년회는 계급운동의 성격을 분명히 밝힌 새로운 강령에 따라 무산계급 청년들의 계급의식을 고양시키는 내용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독서회를 조직하거나 프 로청년문고를 설치하여 운영하였으며, 강연회도 사회주의운동과 관련된 사건이나 인물들을 기념하거나 무산청년의 사명을 강조하 는 등 계급의식을 높이는 내용을 중심으로 삼았다. 그리고 기존의 노동야학을 강화하여 회원들의 계급의식을 고취시키고, 야학이 설 치되지 않은 지역에는 청년회 회원들이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청년 회의 기본 활동은 청년운동에 있었지만, 회원들의 대다수가 소 20) 「풍산청년회는 신흥청년회로」, 《동아일보》1924년 9월 22일자. 21) 안동청년연맹의 집행위원으로 金南洙‧安相勳‧柳淵建‧金澈鎭‧李雲鎬‧李 墀鎬‧李棋淵‧李相鳳‧南璋, 검사위원으로 李奎鎬‧李會昇‧南東煥이 선출 되었다(「안동청년연맹 발기창립총회」, 《동아일보》1929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