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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장 1920년대  이후의  사회운동 139 1편 정치 회火星會가 먼저 이를 문제 삼았으며, 안동의 대다수 사회운동단체 도 동조하여 함께 도산서원의 철폐를 주장하였다. 풍산소작인회 는 사건 진상을 조사한 후 도산서원의 만행을 규탄하는 경고문을 발송하였다. 또한 이 운동에 참여한 사회운동단체와 함께 ‘도산서 원철폐운동연합위원회’를 조직하여 공동으로 대응하였다. 이 운 동은 단순히 도산서원의 철폐를 위한 목적이었다기보다는 도산 서원으로 대표되는 봉건적 신분질서를 타파하기 위한 성격을 띠 고 있었다. 풍산소작인회는 이외에도 창립기념일과 국제 노동절인 메이데 이(Mayday), 명절에는 소인극과 농악놀이 등의 행사를 열어 회원 간의 상호 연대를 도모하고 지역민을 위무하는 활동을 펼쳤다. 농 한기에는 좌담회 등을 열어 농민들의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높이 는 데 주력하였다.15) 이처럼 풍산소작인회는 이 무렵 다른 지역 농민단체가 농민의 의식을 고려않은 채 활동을 전개했던 것과는 달리 청년과 사상운동가들이 직접 간부가 되어 대중조직의 결집력 과 투쟁역량의 배양을 우선시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농민은 빠 르게 계급적‧민족적 주체로 성장해 나갔다. 15) 김희곤, í��안동 사람들의 항일투쟁��, 지식산업사, 2007, 376-377쪽; 강정숙, 「일제하 안동지방 농민운동에 관한 연구」, ��한국근대 농촌사회와 농민운 동��, 열음사, 1988, 380-3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