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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138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과금도 납부하지 않았다. 농민들의 집단 대응이 잇따르자 지주들 은 풍서농무회豊西農務會를 결성하여 대응하였다. 지주들은 먼저 풍산 소작인회의 간부를 일제 경찰에 고발하는 한편 소작농민의 소작 권을 빼앗고 농무회에 가입한 소작농민에게만 소작권을 주었다. 이에 맞서 회원들은 지주의 소작권 박탈을 항의하고 소작권을 인 수한 소작농민에 대해서는 경작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압력을 가 하였다. 그리고 지주의 압력과 책동을 이겨내지 못해 소작인회를 탈퇴하거나 규칙을 위반한 농민에 대해서는 노동력의 지원을 거부 하였다. 반면에 소작권을 빼앗긴 소작농민과 구속된 회원에 대해 서는 회원들이 생활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서로 도왔다. 이와 같은 회원 간의 단결과 연대, 소작인회의 조직적인 운영은 소작인회의 조직이 확대되는 가장 큰 동력으로 작용하였다.14) 풍산소작인회는 소작농민의 권익 옹호를 위한 활동을 주로 하 였지만, 이외에 봉건적 신분질서 철폐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도 전개하였다. 봉건적 신분질서를 철폐하려는 활동의 대표적인 사 례는 도산서원 철폐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도산서원의 토지를 소 작하는 농민이 소작료를 납부 기일 안에 내지 못하자 서원의 관계 자에게 구타를 당하면서 비롯되었다. 사회주의 사상단체인 화성 14) 강정숙, 「일제하 안동지방 농민운동에 관한 연구」, í��한국근대 농촌사회와 농민운동��, 열음사, 1988, 373-379쪽; 김도형, 「풍산지역의 농업경영과 소 작쟁의」, ��한구근현대사 연구��18, 한국근현대사학회, 2001, 119-1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