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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106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국외 독립운동계는 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고자 했다. 중국 에서는 신규식이 이끄는 동제사同濟社와, 여기에서 성장한 여운형 呂運亨이 대응책 모색에 나섰다.15) 김규식이 대표로 파리에 파견되 었다.16) 이런 움직임은 연해주 동포나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서도 동시에 추진되고 있었다. 특히 일본 유학생들은 2월 8일 동경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독립을 선언한 ‘2‧8운동’을 일으키고 일 본에 ‘혈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독립을 열망하는 민족의 의사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3‧1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이 일 어난 것이다. 초기의 3‧1독립운동 계획은 종교계와 학생들에 의해 각기 추진 되었다. 일제가 한국강점 직후 독립운동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정치성을 띤 모든 사회단체에 대해 강제해산 조치를 단행했기 때 문에, 그나마 조직과 단체를 유지할 수 있던 세력은 사실상 종교계 와 학생조직 뿐이었다. 이들 국내 조직과 국외지역 독립운동자와 유학생의 에너지가 한 군데로 어울려 펼쳐진 항쟁이 바로 3‧1독립 운동이었다. 그 선두를 치고 나간 것이 일본에 유학하던 학생들이 일으킨 2‧8독립선언이었다. 국내에서는 3월 1일 독립선언이 터져 나왔다. 국장에 참석하기 위 15) 金喜坤, í��中國關內 韓國獨立運動團體硏究��, 지식산업사, 1995, 91-92쪽. 16) 여운형, ��夢陽呂運亨��, 1967, 27쪽; 국회도서관, ��韓國民族運動史料��(중국 편), 1976, 1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