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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0월31일 수요일 4 (제142호) 관향조 종친회 전통문화사업에 종사하고 있 는 한 사람으로서 많은 걱정이 되어 전통문화에 대해 논해보 고자한다. 전통문화란 과연 무엇일까? 모든 사람들은 그 의미를 알고 는 있지만 정확히는 설명을 하지 못 한다. 전통문화의 사전적 의미는 오랜 세월에 걸쳐 이어져 내려온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은 것 또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우리만의 고유한문화라고할수있다. 요즘 같은 21세기 현대사회에서는 세계화로 인해 문 화 의 차 이 가 점 점 줄 어 들 면 서 그 나 라 고 유 의 전 통 문 화 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기에 전통문화를 오늘날에 맞게 변화시켜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 가될것이다. 세계화라는 이름아래 우리의 전통문화가 사라져 간 다면 우리민족을 지탱해주는 정신도 없어지게 될 것이 다.이러한 전통문화는 비단 우리나라만 가지고 있는 것 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들이 가지고 있으며 각 나라의 전통문화는 다른 문화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그 고유의 가 치와 중요성을 지니기 때문에 전통문화는 절대로 사라 져 서 는 안 될 유 산 중 의 하 나 이 고 그 민 족 의 과 거 와 현 재 그리고미래를연결하는수단이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들어오는 외래문화 속에 서도 전통문화의 가치를 계승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전통은 올바른 역사인식과 현실인식 등을 매개로 할 때 미래의 창조 발전에 원동력이 될 수 있으므로 전통과 창 조는결코평행선을이루는관계가아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라는 말처럼 민 족의 성패는 전통문화와 세계화의 흐름속에서 어떻게 잘조화시키고유지하느냐에달렸다고할수있다. 요즘세대들을 보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서양문화 의영향을많이받은것을알수있다. 모든분야에서우리나라의전통과는매우다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민족전통의 문화를 찾고 변함없이 계승하자고 한다면 아무도 받아들이지 못 할뿐더러 국 수주의로오인받기알맞은이야기가될것이다. 언제부터 인가 우리는 전통을 낡은 오래되어 죽어있 는 과거로 인식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선진국들 은 전통을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로 미래를 예측하 는 창조의 한 축으로 여기고 있다. 전통문화를 계승 발 전시키기 위해서는 거창한 형식과 많은 사람들이 알아 줘야 할 것 같지만 이는 오히려 전통문화 계승 발전에 저해가되는생각이다. 전통문화하면 고루하고 접하기 어려운 것으로 인식 하는 사고방식부터 고쳐야 한다. 전통문화란 멀리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쓰이고 있는 모든 것들 이를테 면 집에 있는 온돌, 김치와 된장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 는한글등모든것들이전통문화의일부분이다. 이와 비슷한 형태로 한옥숙박을 통한 전통문화 역시 좋은사례이다. 한옥숙박은 해외 여행객들뿐 아니라 국내 여행을 하 는 국민들에게도 굉장한 인기이다. 아파트 생활이 보편 화된 한국에서 한옥에 머물러 보기란 생각보다는 어렵 기에 숙박을 통해서라도 전통문화를 접하고 알게 된다 면이얼마나좋은일인가? 우리나라는 자원도 부족하고 영토도 작은 나라지만 우 리 의 문 화 는 그 어 떤 나 라 와 비 교 해 도 전 혀 뒤 지 지 않 을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문화이다. 그렇기에 무한 경쟁 시대에서 우리는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켜 야 하며 이는 우리의 혹은 우리 후손들에 걸쳐 평생의 과제가될것이다. 뱚 뱜뱞사라져가는전통문화의 뱚뱜뱞어제와오늘그리고내일을향하여 밀성박씨충헌공파경기도고양시원당종중회회장박봉준뱛 함양박씨대구경북청장년회(회장 박 해율)회원 약40여명은 지난 10월9일 숭 조정신 함양 및 종친회원간 돈독한 우의 도모를 위하여 충효의 고장 예천지역 의 도정서원 삼강주막 및 삼강서당 청풍자 종택 치암 박충좌선생과 행정공 박눌, 남야 박손경 선조를 봉향하는 금곡서원 에 알묘 하고 용문사를 다녀와서 초간정 과 예천권씨 초간종택 등을 다녀오는 선 현유적답사를실시하였다. 함양박씨대구경북청장년회는 1987 년 창립되어 대구경북종친회 임원및 이 사로 구성되었으며 함양박씨대종회장 및 대구경북종친회 회장을 역임한 많은 원로종친분들이 회원으로 활동 하고 있 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노칠 현 대구경북 종친회장, 재출, 윤식, 재학, 호주 전 대 구경북종친회장이 참석 하여 더욱 빛났 다. 함양박씨대구경북청장년회선조유적답사다 녀와 2 9 세 의 약 관 (弱冠)으로 입지 잠 ( 立 志 箴 , 뜻 을 세우는 글)을 지 어 학문의 뜻을 세웠고, 또한 지 신 잠 ( 持 身 箴 ) 을 지 어 수 신 지 도 (修身之道)를 깨 우쳐 학문의 근 본을 세웠던 송은 박익 선생을 추모하는 경남 유림봉사가 지난 22일 오전 10시 선생의 영정이 봉안된 경남 밀양시 초동 면 신호리 덕남사(德南祀)에서 엄숙 봉 행되었다. 송은 선생의 높은 학덕과 절의정신을 추모하기 위한 이날 향사는 이태범(李 泰範) 유학자의 집례로 이강용(李康 庸), 안재무(安在武), 조만종(曺滿鍾) 유학자가 각각 순서대로 헌작하고 김태 웅(金泰雄) 축관의 독축으로 개좌와 제 례등1시간여에걸쳐진행되었다. 덕남사는 송은 박익 선생의 영정을 봉 안한 사당으로 순조 33년(癸巳,1833)에 향도 유림의 공의로 덕남서원(德南書 院)을 창건하여 송은 선생을 주벽으로 장자(長子) 우당공(휘 융)과 차자(次 子) 인당공(휘 소)을 배향하여 춘추로 봉사(奉祀)해왔다. 그러나 고종 5년(戊辰, 1868)에 국령 으로 훼철되어 서원강당은 신계재 정당 으로 영정각은 별묘로 이건하여 영정을 봉안해 오던 중, 1933년(癸酉) 모선정 후원에 영정각을 새로 지어 유림봉사하 고 있으며,1989년(己巳)옛 사우(祠宇) 명(名)대로 덕남사(德南祀) 편액하였 으며, 덕남사가 있는 모선정은 조선조 중종때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으로 학행 이 높았던 모선재 박수견(慕先裁 朴守 堅) 선생이 모친상을 당하여 시묘(侍 墓) 3년을 마친 후에도 귀가하지 않고 여묘실(廬墓室)을 지어 수신영모(修身 永慕)하며 평생토록 곡읍(哭泣)하던 곳 이다. 고을 사람들이 선생의 효성에 감 복 하 여 이 여 묘 실 을 모 선 정 (慕 先 亭 )이 라 칭하고 산천방리(山川方里)를 모두 모선(慕先)으로 일컬었다는 것이 모선 정실기에전해내려오고있다. 모선정 건물은 중종 3년(1508) 처음 창건되었으나 선조 25년(1592) 임진왜 란으로 저서 및 문헌일체와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다. 현 건 물 은 그 후 1 5 0 년 이 지 난 영 조 연 간(1742~1776)에 후손들이 성력을 모아 정면 6칸 측면 2칸의 팔작형 지붕으로 중건한 것인데 영남지방 사족(士族) 가 문의 전형적인 정자건물로써 경남 문화 재자료제285호로지정되었다. 송은 선생(1332~1398)은 고려말의 충 절신으로 두문동 현인의 한분이시다. 세 칭 팔은(八隱)으로 칭하는 선생의 시호 는 충숙(忠肅)이다.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를 비롯한 명현과 도의 지교 하였고 탁절(卓節)이 백세(百世) 의 귀감이었다. 공민왕조에 등과하여 소 감, 예부시랑, 세자이부 겸 중서령, 한림 문학 등을 역임하였으며, 세 임금을 섬 기고 섬나라 왜와 북방의 오랑캐를 토벌 하는데큰공을세웠다.당시고려왕조가 날로쇄퇴하여광정(匡定)할기미가없 자 관직을 버리고 아우 천경과 더불어 밀양 향리로 돌아와 스스로 송은(松隱) 이라 자호(自號)하고 산수간에서 시를 읊으며 세월을 소일했다. 이성계가 혁명 하여 등극한 역보(逆報)를 듣고 자탄시 를 지어 고려의 멸망을 한탄 하였다. 태 조4년 국왕이 공조, 형조, 예조, 이조의 판서를 내려도 응하지 아니하자 다시 예 관 권근을 보내 좌의정으로 특별이 초치 (招致)하였으나 맹오(보고 듣지 못함) 라 핑계하고 오징불취(五徵不就)로 죽 음을각오한채왕명을모두거절했다. 태조 7년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들에 게 “나는 왕씨(王氏)의 귀신으로 돌아 가지만 너희들은 이씨(李氏)의 세상에 서 살 게 되 었 다 . 이 미 남 의 신 하 가 되 었 으면 충성을 다하여 힘을 쏟아라. 이전 의 왕조와 지금의 왕조가 다르듯이 부자 (父子)도 사는 시대가 서로 다르다”라 는 유언을 남긴 후에 네 형제는 모두 벼 슬길에나아갔다. 특히 송은 선생이 남 긴 입지잠과 지신 잠은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기도한다. 한편 인당공파대종회는 이날 오후 총 회를 열고 지난해 결산보고와 임원개선 을 하 여 △ 회 장 영 태 (호 군 공 后 ) △부 회장 종식(감찰공 后), 쾌기(시위공 后),춘순(호군공 后)△감사 덕식(감팔 공 后).희재(시위공 后)현종을 각각 선 출하였다. 회의에 앞서 의규 회장은 종원여러분 의 성원에 힘입어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며 감사의 인사와 함께 신임 회장을 중심으로 더 발전하는 인당종회 를만들어가자고말했다. 신임 영태 회장은 무거운 중책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며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고 신임 총무에 인호 호군공종중총무를지명했다. 영태 신임회장은 인당공의 18세손으 로 호군공파 회장을 역임하고 지난해 호 군공 재사 사효재 건립추진위원장을 맡 아 당시 인호 총무와 함께 훌륭한 재사 를 건립하는 등추진력과 숭조심이 강해 기대가 크다. 특히 선조의 유적을 정리 하여 알기 쉽게 책으로 엮는 등 해박한 종사지식을갖고있다. 송은박익선생추모제향경남유림주관 봉행 밀양덕남사븣인당공파대종회정기총회열어신임박영태회장추대 송은박익선생의충절과 높은학덕을추모하기위한 경남지역유림봉사가지난 22일봉행된가운데 김태웅유학자가축관의소임을맡아독축하고있다. 덕남사 제향은 엄격한 예절에 따라 봉행되고 있어 지역의 청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사진은 제 향후 분포례에 이어 음복을 하고 있다(사진 오른쪽부터 이강용 초헌관, 안재무 아헌관, 조만종 종 헌관,이태범집례,김태웅축관 順) 모선정전경-경남밀양시초동면신호리. 박의규이임회장 박영태신임 회장 박인호총무 밀성박씨대종회는 지난 4일(목요일) 오전 11시 밀양시 밀 성회관에서 박희학 고문을 배석한 가운데 임원회의(회장단 회의)를 갖고 박○규 외 21명이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 2018 가합 10455 총회결의 무효확인 소에 대한 응소와 전례위원 구 성의 건을 상정처리하고 2018년 4월 17일 이후 시행한 결의사 항 확인의 건, 밀양 상동간 밀양강교 교량 개량공사 토지편입 잔여 토지 매수 불가에 따른 이의신청 건을 보고안건으로 보 고하는등1시간20분여에걸친논의끝에원안대로가결했다. 제기된 소송의 취지는 「피고(밀성재)의 2018. 4,17. 임시총 회는 무효임을 확인븂하는 것으로 이들 소송인들의 주장은 △ 임시총회는 피고종중(밀성재) 전 회장인 박진국의 임기가 불 과 하루밖에 남아 있지 않은 시점에 다수의 종원에 대한 소집 통지를 결여한 채 개최되었고,그 회의 도중 참석한 종중원 약 120명중 약 70명에 이르는 다수 종중원이 △현 회장의 임기가 단 하루밖에 남아 있지 않은 시점에 회칙을 개정해야 할 만큼 회칙개정이라는 현안이 시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로 출 범하는 회장단에서 각 12중조의 의견을 수렴하여 신중하게 개정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라는 의견을 개진하자, 위 박 진국의 위계로 인하여 원고 박○규 등 약 70명이 퇴장한 것을 기화로, 밀양박씨의 본질과 근간을 흔들고 피고종중 총회의 기능과 권한을 형해화 시키는 내용의 이 사건 개정을 소위 날 치기가결을하였다고한다. 원고들의 소 제기에 대해 사전에 밀양박씨규정공파대종회 (회장 낙규)에서 밀성재로 보낸 공문(밀규총18-85) ‘새 회칙 에 의한 자문위원 및 이사추천의뢰에 대한 답변’의 문서를 갑 제1호증을 증빙자료로 첨부하였으며, 공문 내용도 그동안 제 기해온명칭변경주장등이담겨져있다. 그러나 밀성재측은 전임 회장 임기동안 꾸준히 제기되어온 회칙 개정안으로 이사 회의 시작 전 박진국 회장은 후임회장 단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부득이 개칙개정의 필요성을 제기 하였고, 또 참석한 종중원들이 이를 수용 후 원만하게 개회선 언을 한 후 회의가 진행되었음에도 일부 종파에서 그동안 제 기되어온 밀성박씨대종회 명칭을 ‘밀양박씨대종회’로 변경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수시로 공언하였 고, 이날 회의에서도 회칙 제1조 명칭(밀성박씨대종회라 칭 한다)과 제2조 목적(본회는 밀성대군 후예로써….)부분의 수 정을 강력히 요구하다 갑자기 우리는 밀양박씨이고 밀성박씨 가 아니니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며 참석한 종원들을 특정인 한사람이 ‘모두 나와’라며 지휘 통솔하는 식으로 수십명을 강 요 에 의 해 퇴 장 시 켜 버 려 어 쩔 수 없 이 남 아 있 는 이 사 로 써 이 사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이어진 총회에서 이를 추인하였다. 그러나 원고들의 주장처럼 120명중 70명이 퇴장하였다는 것은 숫자상 맞지 않고 회의장에 있다 퇴장한 사람은 30여명 에불과하다고말한다. 그리고 소집 통지에 대해서는 원고들의 주장과 같이 ‘종중 총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족보에 의하여 소집통지대상 이 되는 종중원의 범위를 확정한 후 국내에 거주하고 소재가 분명하여 통지가 가능한 종중원에게 개별적으로 통지를 함으 로써 각자가 회의와 토의 및 의결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주 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사실에 근거하고 맞는 일이지만 그 동안 밀성재 총회(임시총회)는 통보의 어려움이 있어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일 수 있는 제사 전날 개최하고 이사를 비롯한 주 소가 명확한 종원에게 소집통지를 보내는 것을 관례로 수 십 년 동안 행하여지고 있었음을 강조하고 소송에 참여한 21명 은 태 어 나 서 밀 성 재 에 한 번 도 오 지 않 고 시 도 기 (時 到 記 ) 또 한 작성하지 않은 사람들로써 통지할 방법이 없었다고 주장 하고이또한대법원판례에의한것이다.라고전한다. 이날회의에서는강력한대응과함께응소할것을결의하고 소송대리인 선임 등 일체의 건을 집행부에 위임키로 하였으 며, 전례위원회 구성은 예절과 보학을 후세에 전하여 밀성재 의 전통을 살리는 것으로 원안대로 가결하여 곧 전례위원회 가구성되어다음해춘향부터가동될것으로보인다. 한편 박원주 회장은 이날 회의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화합 과 소통 그리고 애종을 강조하였으며, 2018가합10455 총회결 의무효확인소원고는다음과같다. △박○규(충북 청주) △박○동(서울 관악구) △박○팔(경 기고양)△박○용(경기안양)△박○신(경기의정부)△박○ 관(경기 성남)△박○수(서울 성동구)△박○균(서울 서대문 구) △박○화(경기 의정부시) △박○수(경기 고양) △박○태 (서울 은평구) △박○규(서울 노원구) △박○천(인천 계양 구) △박○용(전북 김제시) △박○헌(경남 사천시) △박○영 (경기 구리시) △박○수(경기 파주시) △박○배(경기 안양 시) △박○문(서울 중구) △박○량(충남 논산시) △박○준 (서울 강남구) △박○화(울산 울구군) -이상22명- 소송대리 인법무법인상승(충북청주시) 밀성박씨대종회임원회의(회장단회의 )가져 박○규외21명총회결의무효확인소에대한응소및전례위원구성등논의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