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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의 운명을 좌시할 수 없어 벼슬을 던지고 의병을 일으켜서 왜적을 무찔렀으며 국치를 당하자 「망한대」를 쌓고 통곡하다가 왜경에게 피체되어 10년형을 받았고 광무황제의 국상을 당한 뒤 한 평생 백립을 벗지 않았던 애국선열 한 분이 계시니 이 분이 바로 의병대장 후은 이학로 선생이시다. 선생은 벽진이씨로 고려 개국원훈 벽진장군 염언과 진현관 대제학 문안공 산화 선생 견간과 이씨조선 단종 때 생육신의 한 분으로 이조판서에 증직된 정간공 경은 맹전의 후손이요. 성균생원으로 조지산 문하에 종유하여 학덕이 높았던 대암 희백의 11세손이다. 증조는 벌암 기현이니 문행이 있었고 조는 瀧(롱)이요, 고는 정봉이니 모두 은덕이 있었으며 비는 문화류씨니 사인 동영의 여요, 서산자미의 후손으로 壺德(호덕)이 있었다. 선생은 철종 10년 을미(1859) 10월 초 8일 영천군 자양면 토동에서 출생하였는데 어려서부터 총준하고 효성이 지극하더니 6세에 內艱喪(내간상)을 당하고 계모 경주김씨를 섬겼는데 김씨는 항상 「우리 아들의 효성은 하늘이 내었다.」고 하였다. 삼종형 구암공에게 수학하여 문학이 성취되었고 커서는 기백이 높고 도량이 컸으며 지용이 뛰어나고 지절이 굳었다. 광무 9년 을사(1905)에 영희전 참봉을 제수받았으나 때는 왜적의 협박으로 소위 보호조약이 체결되던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