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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상해로 도라가 재중국 조선무정부주의자 연맹 화남 아나키스트 연맹 및 동방무정부주의자 연맹 등을 기간으로 항일 해방연맹을 조직하여 서사항일의 선전공작을 하는 중에 제1차 상해사변이 ○기됨에 따라 선생은 이여산 동지와 함께 천진에 잠입하여 일군 수송선 1만 5천돈급 일척을 일청기선부두에서 투탄 대파하고 일군병영 및 일총영사관에 투탄하여 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4266년 3월 왜적이 중국군벌들을 매수고자 주화 대사 유길명을 중심으로 일○정치인이 중국정부 내 친일 거류들이 상해 갑북에서 회합한다는 정보를 접한 선생은 곳 그들의 회의장소를 습격코자 정화암과 밀의하고 이강훈 원심창과 함께 동월 17일 하오 9시 일건 진멸하려던 찰라에 적의 불의역습을 받어 불행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포로가 되여 長崎(나가사키)형무소에서 사형 구형을 받고 수감 중 4269년 5월 22일 상오 5시 천추의 한을 품은채 옥중 원혼이 되니 향년 41세요 혁명투쟁 10유 5년에 집에는 依閭至情(의려지정)으로 廢盲(폐맹)된 자당 윤씨와 미망인 조씨 및 ○孤械鉉(○고계현)이 있을뿐 분전편토의 유산도 없었다. 단기 4289년 2월 일 동지 이정규 근찬 장흥인 고광은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