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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은 1933년 3월 중국 상해의 육삼정 거사 계획이 실패하여 왜헌에 피체되고 일본 장기 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받고 복역 중 1934년 갑술 4월 24일 양 6월 5일 옥중에서 서거하니 향년 39였다. 제 용기의 아들 계현을 양자하여 계대했다. 물환성이하여 세월이 흘러 광복 후 1946년 7월 6일 유해를 일본 장기에서 봉환하여 서울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국민장으로 안장하고 의사로 호칭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3년 정부에서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정읍시의 노력으로 1996년 10월 2일 사단법인 구파 백정기 의사 기념사업회가 발족하여 의사 고택 근지인 정읍시 영원면 은선리 928번지 주변 토지 5929평에 터를 닦아 의열사를 창건하고 의사의 영정을 봉안하기에 이르렀다. 계현은 1남 2녀를 두었으니 남에 재승이요 여에 승희 승진이요 증 현손은 호번하여 이를 생략한다. 치분입석에 즈음하여 기념사업장 박기수 동 임원 김명수 양씨의 청문이 있어 불문을 불구하고 譜記(보기)와 口碑(구비)에 의하여 서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