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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5. 양동교회와 정명∙영흥학교 목포에 정착하기 시작한 선교사들은 선교 사업뿐 만 아니라 지역민을 위한 교육사 업도 시작했다. 그들은 남녀를 분리하여 여학생을 위한 정명학교, 남학생을 위하여 는 영흥학교를 세웠다. 영흥학교는 양동교회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었고 정명학 교도 교회와 도보로 5분 거리의 가까운 곳에 설립했다. 개항 후 얼마 되지 않은, 아 직도 어촌의 때를 벗지 않은 시골에 서양교육을 접할 수 있는 학교를 세운 것이다 . 5-1. 정명여학교 목포정명여학교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 목포선교부에 의해 1903년 9월에 설 립 되었으며 초대교장으로는 여선교사인 서여사(Miss F. E. Straeffer)가 취임하였다 . 1904년 3월 초대교장 서여사가 사임한 후 약 2년간 휴교 상태에 있다가 1906년 4 월 변여사(Preston)가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학교의 운영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한 편 본격전인 학교의 발전은 1912년 1월 약 8천원의 공사비로 석조2층(105평) 교 사용 건물을 신축한 이후부터였다. 1924년 6월에는 신 교육령에 따라 보통과 6년 , 고등과 4년제의 학교로 인가되었으며, 1930년 4월 당시에는 총 10학급에 학생 수 는 304명이었다. 한편 1912년에 이어 1922년에도 석조 교사 1동이 신축되었다. 그리고 해방 후 인 1961년에 그 옆으로 또 다른 석조교사 1동이 지어졌다. 이 두 건물은 1969년에 함 께 해체되어 현재와 같은 큰 규모의 건물로 재건축되어 다시 태어났다. (석재는 그 대로 사용) 사진 28. 정명여학교 초기 옛 교사 사진 29. 제 5대(19011.3~1919.3 ) 유에나교장사택(붉은벽돌 ) 2003년철거(자료:정명10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