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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 서 병호 장로님은 1885년 7월 초 이레 황해도 송천에서 달성 서 경조 목사 차남으로 태어나시어 송천교회에서 개척 선교사 얻더욷 목사에게 세례를 받으시니 한국 최초의 유아 수세자가 되시다. 1906년 서울 경신학교의 유일한 제1회 출신으로써 개화기의 기독청년으로 활약하시다. 1914년에는 중국 상해로 망명하셔서 남경 금능대학을 졸업하신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신한 청년당 당수로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한국 대표를 파견하는 일을 추진하신 것을 비롯하여 독립운동에 공이 크시다. 1945년 조국 광복 후는 모교 교장이 되시어 학교 재건과 영재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시는 한편 사회복지 사업에도 뜻을 두시어 온갖 정성을 다 하시다. 1957년 선친과 얻더욷 묵사와 함께 설립하신 새문안교회에서 장로로 임직되시며 1968년 원로장로로 모심을 받기까지 오로지 민족과 교회를 위하여 충성을 다 하시다. 님의 호 松嵒(송암)의 뜻하는 바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선 소나무의 푸르름 마냥 나라와 겨레와 민족과 교회를 위하여 평생을 신앙의 본이 되시며 사시다가 1972년 6월 7일 향년 87세로 주님 곁에 가시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는 장로님의 업적과 그의 높으심을 기리어 총회장으로 모셔 드리다. 1972년 7월 21일 새문안 교회 당회장 강신명 올리다. 김구례 집사님은 황해도 송천에서 1882년 1월 2일 광산 김 응기씨의 장녀로 태어나 1898년 결혼하신 후 친척간에 화목과 효부로 알려졌으며 1920년 중국으로 망명 생활 중 독립운동자들에게 희생적 봉사로 평생을 바쳐 지내시다가 광복후 귀국하셔서 1953년 11월 26일 주님곁에 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