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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훤은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국권이 침탈되자 1914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투쟁 방략을 모색하다가 병을 얻어 귀국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맹산(孟山)에서 시위를 주동한 후 다시 상해로 건너갔다. 상해에서 영어전문학교를 수료하고 1920년 4월 14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의 서기로 임명되었다가 동년 6월 24일 의원 사직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곳에서 흥사단(興士團)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한편 노스웨스턴대학을 졸업하였다. 1931년 초에 귀국하여 상업에 종사하면서 흥사단의 국내 조직체인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에 가입하여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하는 등 활동하다가 1937년 6월 회원 150여 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4년여의 옥고를 치르면서 재판 끝에 1941년 7월 21일 무죄로 석방되었으나 일경의 고문을 견뎌 내야 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