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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102 철원제일감리교회 내 신사참배거부자 순교자 강종근 목사 부조가 건립되었다고 해서 찾았다. 강종근 목사의 흉사 부조는 원주시 행구동 동부연회 본부에도 제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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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근은 서울 사람이다. 1937년부터 1940년까지 교회 신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설교를 하였다. 만주 철령에 있는 육영학교를 다닌 강종근은 이 학교에서 이동교회(裡洞敎會) 목사이며, 민족주의자인 최학기(崔學基)로부터 민족주의 사상을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내에 들어와 경성신학교·배재학당 등을 다니면서 민족주의 의식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강종근은 1930년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기독교 전도사가 되어 경기도 연천군 연천면에 있는 연천교회에서 근무하였다. 이곳에서 강종진은 신도들에게 민족의식을 함양시키는 설교를 하였다. 그리고 1938년 5월 목사가 되어 강원도 금화군 창도면 창도교회(昌道敎會)로 옮겨서도 신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 결과 강종근은 1940년 6월 철원 제일교회에서 목회 활동 중 조선총독부의 '사상범 예비검속령'에 의해 피체되었다. 그래서 1941년 10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후 경성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2년 6월 고문으로 인한 신병의 악화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