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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명철은 경남 거창(居昌) 사람이다. 당시 거창군 가조면 석강리(加祚面 石岡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곳의 애국지사 김병직(金秉直)·어명준(魚命俊)이 검거되자 분노를 느끼고 거창읍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서로 연락하여 1919년 3월 21일 가조면 석강리 정자(亭子)나무 아래에 모여 비밀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여 다음날인 22일 거창읍 장날을 기하여 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오문현(吳文鉉)·신병희(愼炳禧)·어명우(魚命佑)·이병홍(李秉洪)·김호(金濩) 등과 함께 대표로 뽑혀 밤을 새워가며 주민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는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밖으로 정보가 누설되어 일제헌병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있던 중 1919년 3월 22일 거창읍 가조·가북면의 3,000여 만세시위대에게 구출되어 군중과 합세, 거창읍으로 행진하여 그 선봉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헌병에 피체되었다. 그리하여 이해 7월 31일 부산지방법원 거창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