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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8월31일 금요일 4 (제140호) 관향조 종친회 아당공(휘 조)의 선계(先系)는 신라시조왕의 29世 경명왕 의 장자 밀성대군의 후예이다.중조(中祖)태사공(太師公)휘 언부(彦孚)는 고려 문종(1047년 丁亥)때 문과에 급제하여 최 충과 함께 태사(太師)를 지냈고 중서령 문하시중 도평의사를 역임하였으며밀성부원군에추봉되었다. 아들을 둘 두었는데 맏이는 효신(孝臣) 차는 의신(義臣)이 다. 고려 인종은 양 형제를 효의양신(孝義兩臣) 또는 고려주 석(高麗柱石)이라 부르고 동방대성(東方大姓)이란 어필 넉 자를 하사 했다. 효신(孝臣)은 과거에 급제하여 문하시중이 되었고 평장사로서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 천자가 예로서 대우하여치사하였고본국에돌아와졸하였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라 사시하고 인종묘에 배향하였다. 의 신은 공부상서로서 종방인 양신(良臣, 彦祥의 아들), 직신 (直, 彦仁의 아들)과 더 불어 세상에서 삼언사신(三彦四臣) 이라알려져있다. 공필(公弼)은 효신의 아들 형제(공필·공발)중 장자인데 과 거에 급제하여 대장군 도검사 병부상서를 역임하였다. 공은 문무에 재주가 겸비하여 고려 예종(1107년) 2년에 윤관과 같 이 여진을 쳐서 평정했다. 뒤에 진국공신으로 추존되었고 시 호를충열(忠烈)이라사시하였다. 육경(育慶)은 공필의 아들 삼형제(육경·육화·육권) 장자 인데 1130년 인종8년에 대장군과 병부상서를 지냈다.또 1135 년에김부식과함께적(賊)조광등을쳐서평정하였다.또,글 을 올려 양현고(養賢庫)를 세워서 많은 선비를 기르게 하고 또한 모든 고을에 널리 학사를 설립하였으며 국사를 보살펴 수정하였다. 대화(大和)는 육경의 아들인데 대호군 이부상서였으며, 수 문학 대제학으로문무가겸전하였다.간(幹)은 대화의 아들인 데 문과급제로서 병부참정(兵部參政)이었고 시호는 양효(良 孝)이다. 배위는 추화군부인(推火郡夫人) 밀성손씨(密城孫 氏)인데여지승람에기록되어있다.두아들을두었는데영균 (永均)·세균(世均)형제이다. 은산부원군 휘 영균(永均~1300)은 양효공 간의 맏이다. 고 려조에 익대공신으로 벼슬은 판도판서와 삼제(三帝)를 역임 하였고 응천군으로 봉군되었다. 뒤에 또 은산부원군(銀山府 院君)으로 추봉되었다. 시호는 문헌(文憲)으로 사시되었고 묘소는 경남 창녕군 계성면 광계마을 뒤 을좌(乙坐) 구릉에 있다. 은산부원군은 아들 삼형제(翊·天卿 ·文卿)를 두었는데 맏이 휘 익(翊, 1332~1398)의 호는 송은(松隱)으로 자는 태시 (太始)이다. 공민조에 급제하여 사재소감, 예부시랑, 중서령, 예판에 올랐으며, 이성계와 같이 남정북벌을 했다. 그러나 려 말 국정이 쇠퇴하고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밀주 송계 에 돌아와 정 포은,이 목은,길 야은 등 여러 선비들과 시국을 개탄하고걱정하면서문학을즐기고토론하였다. 이성계가 등극한 후 송은 선생을 다섯 번이나 불러 좌우정 승을제수하려고해도끝내나가지않았고세칭8은이라했다. 좌정승에 증직되고 시호는 충숙(忠肅)이며 배위는 경경부인 성산배씨, 창원박씨, 고흥유씨이다. 경기도 파주의 고려 통일 대전에 고려 충절신으로 배향되었고, 그 외 밀양 덕남사 청도 용강서원,산청 신계서원,창원 운암서원 등에 배향되어 있다. 그리고 지난 2000년 9월 경남 밀양시 고법리 소재 송은선생 고분에서 벽화가 발견되어 국가 문화재 사적제459호로 지정 되었으며, 아들은 넷인데 맏이 융(融)은 우당공파, 차자 소 (昭)는 인당공파 셋째 조(調) 아당공파, 넷째 총(聰) 졸당공 파의각파조가된다. 아당공은 고려절신 송은 선생의 셋째아들로 고려 충정왕 2 년(1350,庚寅)6월 18일 경남 밀양시 삽포리에서태어났다. 8세에 소학(小學)에 입학하여 마음을 집중하고 해독(解讀) 에 힘 을 기 울 여 스 승 의 가 르 침 을 번 거 롭 게 하 지 않 았 으 니 이 는 가정에서 얻음이 그러했던 것이다. 장성하자 포은 정몽주 선생께배웠으며대개고려오백년이래참다운유학(儒學)이 없더니 포은 선생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 도(道)를 일으켜 밝 히는데 아버지 송은공이 포은 선생과 더불어 평상일에 서로 강마(講磨)하여죽고삶을같이하는교분이되었기로네아들 로하여금스승으로모시게하였다. 공(公)이 몸소 배우기 몇 해만에 조예(造詣)가 더욱 정밀하 고 학문이넓고깊어 정주(程朱)시대(時代)의 성리학에 심오 (深奧)한지의(旨義)를얻어들었다. 일찍이 논어를 읽다가 안자(顔子)의 사물장(四勿章)에 이 르자 문득 책을 덮고 탄식하시를 성인(聖人)이 되고 현인(賢 人)이 되는 방법이 모두 여기 있구나하고 거처하는 집을 이름 하여 아당(啞堂)이라 하니 아(啞)는 바로 물언(勿言)을 이름 한다. 어버이를 섬김에 반드시 기색(氣色,감정의표현)을낮추고 소리를 화하게 하며 마음을 편하게 해드림을 첫째로 삼고 조 석으로 안부 묻기를 잠시도 폐하지 않았으며, 그 상고(喪故) 를 당 하 여 장 례 에 관 한 모 든 절 차 를 한 결 같 이 가 례 (家 禮 )대 로하였다. 형제사인(兄弟4人)이 책상을 나란히 하여 학문을 강론하고 연구하면서 화합하고 기뻐하여 오래도록 즐거워하니 춘당 (春堂)변중량(卞仲良)과 여러 선비들이 그 집을가리켜사우 당(四友堂)이라하여형제간의남다른우애를칭송하였다. 진사(進士)로 뽑히고 효행(孝行)으로 추천(推薦)되어 예 조정랑(禮曹正郞)이 되더니 만년(晩年)에 산수(山水)에 정 을 붙 여 아 우 졸 당 과 더 불 어 강 우 (江 右 ) 에 복 거 (卜 居 ) 하 니 선 생의 우거(寓居)는 의춘(宜春)의 박영(朴嶺)이고, 졸당의 우 거는 가수의 대평이다. 말하자면 송은선생이 네 아들에게 내 린 유명(遺命)에 나는 왕(王)씨의 원혼( 쪼魂 )에 돌 아 가 고 너 희들은 이(李)씨의 세상에 있으니 선천(先天)과 후천(後天) 으로 부자(父子)의 시대가 다르다 한 말씀이 있기 때문에 선 생은 명(命)을 받들어 출사(出仕)했지만 본래의 마음은 여기 에있지않았다. 일찍이 우당의 송현시(松峴時)에 화답하기를 세덕(世德) 은푸른관복이거추장스럽고공명(功名)은흰머리털만남았 네 머리 돌려 옛 문물(文物)회상하니 내 마음 그 가운데 살고 있어라 하고, 자관시(自寬詩)에는 천심(天心)은 후하고 박함 이 없어 음곡(陰谷)에도 봄볕이 든다하니 변춘정(卞春亭)이 크게탄상(歎賞)하였다. 그 산 정 시 (山 亭 詩 )에 빈 뜰 에 해 는 길 고 일 없 이 잠 만 오 는 데창밖에시내물소리돌을만나떠들썩하네하고성독곡(成 獨谷,成石璘)의 시에 화답하기를 노연(魯淵)이 연꽃과 달 등 한한지오래되어옛풍광그리워다시배에오른다했다. 이 몇 편의 시를 보아 가히 선생의 흉회(胸懷)가 쇄락함을 알겠고그 식견(識見)의 높음과 포부(抱負)의 장함학문의바 름이자연히언사의표면에나타난것이다. 세종13년 신해(1431년)10월 초2일에 영면하니 향수(享壽) 82세였다. 산청 신계서원 정충사에 배향되었으며, 배(配)는 공인 영산신씨인데 사직 희(喜)의 따님이요 배(配)에 광산김 씨는지택의따님이다. 아당공은 삼남을 두니 맏이는 흥문(興文)인데 진사과로 50 세에 종3품 보공장군에 올랐고, 호는 경암(敬庵)이다. 다음은 두문(斗文)인데 문장이 있고 생원으로 문과정자(文科正字) 이고호는경재(敬齋)다음은기문(起文)이다. △ 경암공(敬庵公, 휘 흥문) 은 아들 셋(義孫·禮孫·信孫)으 로, 맏이는 의손(義孫)인데 진사(進士)이고 문장이 뛰어났으 며, 한(瀚)·조(條)·지(枝)·류( )등4형제를두었다. 맏이 한(瀚)은 인대(仁垈)·인화(仁華)형제를 두었는데 맏 이인대(仁垈)의아들은훤(萱)·명(蓂)형제이다. 뱚파조별약사 밀성박씨아당공파(啞堂公派) 물언재(勿言齋)전경(좌측 아당공제단)경남진주시금산면속사리. 물언재는 1882년 진주 월아산 금선봉 아래에 아당공의 제단을 마련하고, 1942년 재숙로 건립되었다. 이후 1987년 운당산 죽전곡 으로 이건하였으나 공 군사령부가이전하면서2010년현위치에중건하여9개문중905위의선조님위패를봉안하고있다. 아당공이하 흥문,의손,한,인대,훤,사림,사운,사우등6代16위제단(물 어재옆) 물언재위패봉안당- 장묘문화개선과 후손들의화 합을위해물언재를중 건이후 현재까지 905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음4월 1일 합동 향사하 고있다. 아당공파는 박문(朴門)의 종가(宗家)인 밀성대군 후(后) 은산부원군(휘 영균)의 장자 송은공(휘 익) 의셋째아들휘조(調)를파조로하고있다. 아당공께서는거처하는집을이름하여아당(啞堂) 이라 하였다. 아당(啞堂)의 아(啞)는 바로 물언(勿 言)을 이름 한다. 예(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 함 은 사물(四勿)의하나로서 공자(孔子)께서 제자 안 자(顔子)가인(仁)을물었을때 답한말인즉인(仁) 의도(道) 됨이 크고 시청언동(視聽言動)이 인(仁) 을 하 는 조 건 (條 件 )이 아 닌 것 이 없 거 늘 꼭 물 언 (勿 言)이란 두 글자의뜻을 따서 당(堂)을 이름 한 것 은대개인심(人心)의동작(動作)은말로서시작되 며 말이란 인간의중요한 기관(機關)으로 먼저 물 언(勿言)으로부터 공부(工夫)를 쌓은 뒤에 시(視) 와청(聽)과동(動)이스스로비례(非禮)한일이없 을 것이라 공(公)이 안자(顔子)를 바라는 마음으로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절목(節目)에 유념(留念) 하여 물언의 뜻을 따내어 종신(終身)토록 마음에 새겨잊지않았으니가히뜻을세움에굳고확실함 을보겠으며성인이되는중요한방법을터득했다 하리라이에공의사후(死後)587년이지난지금에 도 후손들이 예(禮)를 숭상하며 물언재를 중심으 로 돈독한 우애(友愛)로서 애종(愛宗)을 실천하고 있어소개해본다. 뱚아당공파선원세계(先系) 뱚아당공(啞堂公,휘調)생애( 生涯) 아당선생묘소.(경남진주시집현면장흥리산64번지) 신계서원(경남산청군신안면) 뱚아당공파세계(世系) 벽양재(碧陽齋)경남의령군화정면상일리 경재공(휘두문)의재사(齋舍)이다. 통양재(경남사천시용현면통양리239-22) 도사공(都事公,휘사운)이하 선조재사(齋舍) 뱚▶5면으로계속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