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page


178page

월진회 등을 중심으로 한 농민운동 윤 의사는 '공동묘지 묘표사건' 이후 문맹퇴치를 위해 먼저 자시의 서당에서 야학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학부형과 동네의 청장년에게 우리글과 역사, 영농방법 등을 가르쳤다. 일제의 식민통치보다 무서운 무지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또한 의사는 농민운동의 구체적 추진을 위해 부흥원(復興院).위친계(爲親契).월진회(月進會) 등을 설립해 운영했다. 의사는 경로위친의 미풍양속 생활화와 공동재산의 증식을 목적으로 1929년 2월 위친계를 설립했고, 1929년 4월에는 월진회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다. 월진회는 농민들의 상부상조와 자급자족을 통한 농촌의 부흥과 더 나아가 조국의 독립을 실현하려는 목적에서 결성되었다. 의사는 고향 마을의 농민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에 대한 희망을 제공하기 위해 농민운동을 추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