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page


13page

강성모 지사 추모비
13page

해산 강철구 선생은 1894년 신묘 2월 9일에 원림천군 장정리에서 탄생하셨다. 선계는 고려초엽 박사공 휘 사담의 27대손이신 대종교 사교 호석 강모초 휘 석기 선생과 담양전씨 사이에서 삼형제 중 차자이시다. 성장과정에 출중하고 영민한 재질과 언행의 비범함에 주변으로부터 칭송과 경탄이 적적함에 사서를 공부하는데 경서나 딴 전적까지 독파하였다. 당시 날로 국운은 사양길에 접어들고 종교지도자 가문에 담대한 인물이 나오고 이적을 이룬다는 소문이 일어 문중에 무수한 인재들이 모여 들었으며 그 중에는 대종교도 박로철과 이극로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선생이 23세가 되자 대종교도로서 뜻한 바 있어 북간도 연길현 동불사촌에 들어가 천영학교 교사가 되어 2세들의 민족교육에 심혈을 쏟았으며 1920년 1월에 북로군정서 총재 백포 서일 장군의 비서역을 맡고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단군사상의 교화와 동지들을 영입 만주 동경성에 천전건립 계획 등을 위한 부지확보 목전인 1923년 3월 31일 재만독립운동의 거물로 지목되어 동년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루게 된다. 1920년 4월 윤정현의 명령으로 고향 부여에 파견되어 박창규 박남규 등으로부터 군자금을 조달해 가지고 만주로 귀환하여 서무부장 김택에게 수교하였다. 1922년 6월에는 사관연성소 확충자금 모금차 임시정부 발행 공채 3만5천원 상당의 문서를 가지고 재입국하였다. 함북 회령에서 김동진을 청진에서 김동순을 서울에 와서 문용섭을 각지 동지들을 영입하고 동년 9월에는 부여에서 문장섭 김재와 김삼현 문경섭 등 동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