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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강 _ 수원 그날의 함성 수원사람들의 독립운동 | 97 잡보 < 국채보상취지서 > 에 실려 있다 . 임면수 등이 주장한 국채보상운동은 수원주민들에게 큰 파장을 일으켰다 . 이들은 국한 문으로 된 취지서 수백 매를 자비로 인쇄 · 배포하였다 . “나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 은 재물을 가볍게 여긴다 . ”는 취지로 거리 홍보에도 적극적이었다 . 또한 도내 각 군에도 취지서를 무료 배포하는 등 국채보상운동 확산에 노력을 기울였다 . 이에 2 - 3 일 만에 의연 금 수백 원이 모금될 정도로 대단한 호응을 받았다 . 도내 국채보상 활동은 이들에 의하여 활성화되는 계기를 맞았다 . 재무원인 나중석 · 차유순 ( 車裕舜 ) 등도 운영 경비를 자담하 는 등 열성적이었다 . 이러한 분위기는 경쟁적인 의연금 모금으로 이어졌다 . 관립수원농림학교 · 수원공립보 통학교 직원과 생도 등도 분위기 조성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 이는 근대교육 필요성과 자립 경제 수립를 위한 경각심을 주민들에게 일깨웠다 . 1907 년 8 월 초까지 계속된 모금 현황은 현지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관내 국채보상운동은 이러한 가운데 더욱 확산되었다 . ( 2 ) 삼일학교 설립과 발전에 기여 1903 년 임면수는 젊은 동지들과 함께 삼일학교를 설립하였다 . 당시 이하영과 나중석과 는 인척관계로 동지였다 . 이성의 ( 李聖儀 ), 최익환 ( 崔翼煥 ), 홍건표 ( 洪建杓 ), 차유순 , 김제 구 등도 참여하였다 . 삼일학교는 발전을 거듭하던 중 1906 년에 이르러 재정적인 어려움에 봉착하였다 . 이에 부호 강석호 ( 姜錫鎬 ) 는 1906 년 5 월 거금을 의연하였다 . 나중석도 부지 900 여 평을 기증하 였다 . 삼일학교는 1906 년 9 월 1 일 심상과와 고등과로 개편되었다 . 1 년 과정인 심상과 교과목 은 성경 · 국어 · 역사 · 한문 · 산술 · 영어 · 체조 등이었다 . 3 년제인 고등과는 성경 · 한문 · 국 어 · 수신 · 생리 · 광물 · 문리 · 산술 · 본국역사 · 본국지지 · 만국역사 · 만국지지 · 작문 · 도화 · 체조 등이었다 . 교과과정 정비는 교육내실화를 도모하는 ‘획기적인’ 계기로서 작용하였 다 . 더욱이 체조는 매우 중시된 교과목 중 하나였다 . 군사훈련에 버금가는 병식체조와 행 군은 학생들에게 상무정신을 고취시켰다 . 담당교사는 구한국군 출신인 강건식 ( 姜建植 ) 에 이어 송세호 ( 宋世鎬 ) 였다 . 초기에 임면수도 수업을 담당하였으나 학교교육이 확장됨에 따라 교감직을 담당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