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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강 _ 수원 그날의 함성 수원사람들의 독립운동 | 95 2 ) 민족의식의 형성 - 상동청년학원에서 공부 상동청년학원은 1905 년 상동교회에서 설립해서 , 운영한 중등부 과정의 교육기관이다 . 상동교회 전덕기목사는 초등교육기관인 공옥여학교와 공옥남학교 외에 중등부 과정의 청년학원을 설립하였다 . 1904 년 10 월 미국교포 강천명 ( 姜天命 ) 이라는 사람이 그 때 돈 5 원을 교육사업에 써달라고 부쳐옴으로써 학교 설립이 이루어졌다 . 학교가 개학한 때는 1905 년이었다 . 전덕기 목사는 이 청년학원을 통하여 구국운동에 헌신할 인재를 양성하고 투철한 민족정신을 키워주기 위하여 신앙교육과 함께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 교육내 용은 한글보급운동 · 국사강의 · 외국어강의 · 군사훈련 · 신문화 수용과 전파 · 지도자의 자기 수양 ( 종교훈련 ) 등을 가르쳤다 . 상동청년학원을 통한 한글보급운동은 주시경 ( 周時經 ) 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었다 . 주시경은 1907 년 7 월 1 일부터 상동 청년학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하 기 국어강습회를 열어 국문법을 교수하였다 . 그 교수 내용을 보면 , 음학 ( 音學 )· 자분학 ( 字分學 )· 격분학 ( 格分學 )· 도해학 ( 圖解學 )· 변성학 ( 變性學 )· 실용연습의 6 과를 교수하 였다 . 또한 매주 일요일마다 주일예배 후 오후 2 시부터 2 시간 정도 정기적으로 상동청년 학원 내에서 국어의 중요성과 과학성을 강조하며 가르쳤다 . 1907 년 11 월부터 1909 년 12 월까지 상동청년학원 안에 국어야학과를 설치하고 국어문법을 가르쳤다 . 또한 한국사와 한국지리 , 그리고 교련시간을 강화하여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고취시켜 독 립정신을 함양하는데 주력하였다 . 특히 교련시간에 학생들은 목총을 메고 군가를 부르며 북소리에 맞추어 행진하였다고 한다 . 임면수의 상동청년학원에서의 공부에 대한 기록은 허영백이 작성한 임면수의 비문에 있다 . 비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 당시 구한말 선생은 뜻한 바 있어, 수원에서 서울로 상경하였다. 상동감리교회 안에 설립되어 있는 청년학원에서 영어와 일어와 측량을 공부하면서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상동청년학원은 상동교회의 담임목사 전덕기 목사가 설립하였다. 당시 이곳은 기독 교 중견인물들의 집합소이며 애국자들의 총 집합소였다. 임면수는 서울에 유학하면서 교회와 독립협회가 주최하는 강연회니 토론회니 정부탄핵 연설장이니 강습회니 빠짐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