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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수원박물관 제 16 기 박물관 대학 근대 수원과 수원사람들 1 . 김세환 1 ) 1 ) 삼일여학교 학감으로 민족의식 고양 3 · 1 운동 당시 48 인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김세환 ( 金世煥 ) 선생은 1888 년 11 월 18 일 수 원시 남수동 242 번지에서 태어났다 . 그의 소년기 역시 변화의 물결 위에 있었는데 , 수원 에 기독교가 들어오는 시점이었다 . 1901 년 성안 보시동에 감리교회가 들어섰다 . 지금의 북수동 수원 종로교회인데 , 그가 태어난 남수동에서 가까운 그곳을 소년 김세환이 출입했다 . 김세환은 교회를 통해 기독교 신앙 뿐 아니라 교육가로서 또는 독립운동가로서 그의 꿈을 키워 나갔다 . 이후 서울의 관 립 외국어학교로 진학해 공부했던 김세환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중앙대학에서 신학문 을 배웠다 . 일본에서 돌아온 김세환은 고향 수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 상업강습소 직조 감독관으로 일하며 동시에 선생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 1913 년 김세환은 삼일여학교 학감으로 부임했다 . 김세환이 삼일여학교 학감으로 부임 할 당시 수원군의 교육상황은 여전히 서당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었다 . 삼일여학교 학감인 김세환은 학교를 자주 비우는 밀러 교장의 빈 자리를 대신하는 역할을 했다 . 삼일여학교 를 새롭게 단장하는 등의 열성과 더불어 그는 학교 건물에 한반도 지도를 조각해 넣음으 로써 학생들과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양시키고자 했다 . 또한 학생들을 위해 학교 앞 개울 ( 수원천 ) 위로 다리를 놓았다 . 삼일여학교는 화홍문과 매향교 중간에 위치해 당시 학생들은 학교 앞 수원천의 징검다리를 건너 다녔다 . 그러나 장마철에는 징검다리가 물에 잠겨 학생들은 화홍문과 매향교로 돌아 다녀야 하는 불편이 있었던 것이다 . 이에 김세환은 학교 앞 수원천 위에 쇠줄을 걸고 그 위에 화성 팔달문 문 짝을 올려놓은 쇠다리를 설치했다 . 그러나 이 쇠다리는 1920 년 ( 庚申年 ) 장마로 유실됐다 . 이후 삼일학교 앞 다리는 1926 년 봄 삼일여학교에서 1400 원의 거금을 들여 6 개월만에 개 설하고 이름도 새롭게 ‘삼일교 ( 三一橋 ) ’로 명명해 새로운 명물이 될 수 있었다 . 1 ) 수원인물열전 66 - 한동민 ( 수원박물관 학예팀장 ) 2010 년 5 월 10 일 수원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