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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수원박물관 제 16 기 박물관 대학 근대 수원과 수원사람들 비록 자본금 때문에 사설철도 협궤로 건설되었지만 수원 - 여주간의 수여선 부설은 일제 가 경기도 내륙의 곡창지대와 경부철도를 연결하여 미곡의 반출을 원활히 하고 일본 사람 들의 진출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 물론 지역 주민의 교통 편의를 제공하려는 순 기능도 고려됐겠지만 , 경동 철도의 자본과 경영이 철저하게 일본이 위주였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주목적은 일본 자본의 내륙 진출과 미곡의 반출이었다 . 그러나 해방 이후에 는 자동차 교통에 밀려 부설 42 년만인 1972 년 폐선되었다 . 수인선은 인천상공인들의 요청과 경동철도주식회사가 총독부의 보조금 받아 건설되어 서해안 포구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비롯한 해산물이 경기남부 및 강원영서지역의 내륙으 로 , 내륙 지역의 쌀을 포함한 농산물들이 인천항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하였다 . 수인선은 수여선과 마찬가지로 일제가 식민지 지배를 원활히 하고 인적 물적 자원의 수탈을 원활히 한 것에는 틀림없다 .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근대문물의 편리함이라는 또 다른 기억속의 역사임에도 틀림없다 . 수여선과 수인선은 식민지 시대와 6 , 70 년대의 산업화 시 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소중한 역사이다 . 1970 년대 이후 철도 교통이 자동차 교통의 편리함에 밀리기는 했지만 , 오늘날 철도교통이 자동차 배기가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청정교통수단으로 환경적인 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므로 , 여전히 아직도 곳곳 에 남아있는 열차 운행의 흔적을 아주 지워버리기 보다는 미래를 위한 관점에서 적극적인 활용을 기대해본다 .